일본 섹스 시네마
일본 영화, 에로영화, 섹스 시네마, 핑크영화, 로망 포르노, 소프트코어 에로물 신간 <<일본 섹스 시네마 Behind the Pink Curtain: The Complete History of Japanese Sex Cinema>>
이 충만한 살 내음
1965년 일본은 213편의 독특한 영화를 개봉한다. 서양 말로는 소프트코어 포르노그래피, 일본 말로는 핑크영화다. 감독 입문도 쉽고 적은 돈으로 만들 수 있고 간섭하는 제작자도 없을 뿐더러 개봉할 극장도 있고 무엇보다 많은 관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시작해 세계적인 감독이 된 사람도 많다. <<일본 섹스 시네마>>는 이런 이야기다. 물론 싱싱한 540장의 충만한 살 냄새는 토핑이다.
Behind the Pink Curtain이 무슨 뜻인가?
하드코어 영화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와이드 릴리즈된 장편 포르노영화 <Behind the Green Door>(1972)에서 따왔다. 일본 핑크영화의 속살을 보여 주겠다는 말이다.
핑크영화란?
일본 에로영화의 한 가지다. 전문 영화인이나 준전문 영화배우와 스태프가 35㎜ 필름을 사용하여 독립적으로 만든 영화다.
왜 만드나?
관객에게 성적 만족을 주기 위해서.
일본에서 핑크영화의 위치는?
전성기인 1965년에 213편이 개봉됐다. 지금도 명맥은 유지한다. 2003년에 287편의 일본 영화가 극장에 소개됐는데 89편이 핑크 영화였다.
왜 일본에서만 이런가?
저자는 “핑크영화를 단순히 ‘문화적 차이’나 동서양의 이분법으로만 정의하려는 것 역시 무리한 시도”라고 적었다.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책의 설명은?
핑크영화의 태동기이자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 핑크영화가 일본 지방 극장의 보조상영작으로 꽤나 인기를 끌었다는 점, 또 같은 시기 도쿄올림픽의 개최와 함께 도시로 상경한 많은 노동자들에게 핑크영화관이 훌륭한 오락의 장소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은 일본 섹스 시네마를 어떻게 보여 주나?
말 그대로 핑크영화의 세계를 다룬다. 핑크영화는, 물론 다양한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여 35㎜로 제작한 일본 소프트코어 에로물을 말한다.
디지털 영상물이나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가 대세인 요즘도 그런가?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일본 핑크영화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 영화 전반은 물론 현대사의 맥락과 연관 지어 핑크영화의 태동부터 현재까지 주요 감독과 배우, 작품 세계, 서브 장르를 다룬다.
서양 포르노그래피는 설명 안 하나?
일본 핑크영화를 서양 포르노그래피 영화사와 비교한다. 흥미롭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가 핑크영화로 데뷔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뿐만 아니라 다키타 요지로(<굿’바이>), 히로키 류이치(<바이브레이터>), 아오야마 신지(<유레카>), 스와 노부히로(<M/Other>)가 핑크영화로 데뷔해 일반 영화로 옮긴 뒤 세계적 감독이 됐다.
왜 섹스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들은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섹스영화도 다른 영화들만큼이나 좋은 출발점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핑크영화는 메이저 영화의 도제 시스템과 달리 감독으로 쉽게 데뷔할 수 있다. 그들에게 매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와카마쓰 고지도 핑크영화 출신인가?
그는 <정사의 이력서>(1965)의 대성공을 통해 포스터에 붙은 자신의 이름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최초의 핑크영화 감독이었다. 게다가 같은 해 제작된 <벽 속의 비사>는 베를린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핑크영화로서는 최초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1년에는 <더럽혀진 백의>와 <섹스 잭>으로 칸영화제에 참가했다. 자신의 프로덕션인 와카마쓰프로를 통해 아다치 마사오를 비롯한 많은 후배감독과 영화인을 배출했다.
로망 포르노는 어떤 영화를 말하는가?
한마디로 핑크영화의 대중 버전이다.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니카쓰가 1971년부터 1988년까지 제작한 일련의 성애영화다. 원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망 포르노는 “성(性)이라는 소재를 언더그라운드에서 끄집어내 먼지를 털어, 커플 관객이나 여성 관객 등 보편적 대중을 위해 포장”했다.
왜 사라졌나?
1980년대 AV, 비디오물과 경쟁하다 결국 막을 내렸다. 이후 늘어나는 비용과 줄어드는 박스오피스 수익률 때문에 많은 극장주들이 상영관의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핑크영화 산업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이때 등장한 이들이 핑크 사천왕이었다.
사천왕, 그들은 누구인가?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네 명의 감독, 사토 히사야스, 사토 도시키, 사노 가즈히로, 제제 다카히사를 가리킨다. 이들은 섹스를 수단으로 삼아 다양한 작가주의적 시도를 했으며, 예술과 선정성의 경계를 뛰어넘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소비적 섹스영화로 무시되던 일본 핑크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중요 인물들이다.
한 사람을 꼽는다면?
제제 다카히사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핑크영화계와 상업영화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내러티브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으며 <가물치>(1997)는 그중에 백미라고 할 만하다.
저자 재스퍼 샤프는 어떤 사람인가?
작가이자 영화 큐레이터, 웹사이트 <미드나이트 아이(Midnight Eye)>의 공동 편집자다. <미드나이트 아이>는 일본 영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영어 사이트로 유명하다. 현재는 가장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일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인 영국의 지팡구페스트와 토론토의 신세대 일본 영화제에서 디렉터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사람이 왜 <<일본 섹스 시네마>>를 썼을까?
한국어판 서문에서 재스퍼 샤프는 “(서양에서) 아직까지 어떤 사람도 일본의 섹스영화를 심층 분석하지 않았기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솔직히 밝혔다. 머리말에서는 십 대 시절 와카마쓰 고지의 걸작이자 괴작이라 할 만한 <더럽혀진 백의>를 만났던 때의 당혹스러웠던 기억을 적고 있다. 이 책은 핑크영화에 대해 그가 갖고 있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성과는 어땠나?
출간 직후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일본 핑크영화 산업에 대한 연구로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당신은 왜 이 책을 옮겼나?
핑크영화의 산업적 시스템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투자, 제작, 배급 등에서 주류 영화계와는 다른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위협적인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실제로 번역해 보니 어땠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섹스영화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영화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방대한 분량이다. 뭐가 제일 어려웠나?
국내에서 구해 볼 수 있는 핑크영화가 절대 부족했다. 핑크영화제와 재스퍼 샤프가 보내 준 DVD가 없었다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화보가 몇 장인가?
540장의 살색 충만한 화보는 덤일 뿐이다. 독립적인 제작 방식과 전용 상영관을 통한 배급 방식은 지금 우리나라의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하나의 생존 전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영화를 기획하거나 연출하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196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천 편의 핑크영화가 나왔으니까.
우리나라에서 핑크영화를 만나려면?
각종 영화제나 특별 상영전, 감독 회고전이 있다.
핑크영화가 한국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를 온라인 등을 통해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핑크영화가 국내 관객들에게 상업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일부 핑크영화의 감독들은 영화 속에 꾸며진 섹스 장면 이외에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담을 줄 알았다. 이 책에는 그렇게 일반적인 섹스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영화들이 많이 담겨 있다. B급영화 혹은 음지의 영화가 아니라 섹스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영화인들의 의지는 충분히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승호다. 마루, 박설영과 함께 이 책을 번역했다. 영화제작자와 프로듀서(<헬로우 마이 러브>), 다큐멘터리 연출(<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을 거쳐 현재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장편영화 <노리개>(2013년 3월 개봉 예정)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