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군전
아시아 고전 특집 1. 한국 편
이복규가 현대어로 옮긴 ≪임장군전≫
네가 자점이더냐?
임경업은 충신, 김자점은 간신이다. 나라를 지키려다 죽임을 당했고 자신을 지키려고 죽임을 꾀했다. 소설 낭독을 듣던 한 사람이 담배 써는 칼을 들어 낭독자를 베어 죽이며 외쳤다. 네가 자점이더냐!
“나는 조선국 장수 임경업이러니, 대국에 사신으로 왔다가 청병대장(請兵大將)으로 왔거니와, 너희 아직 무지(無知)한 말을 말고 승부를 결(決)하라.”
하니 가달이 대로(大怒) 왈,
“너보다 십 배나 더한 장수도 오히려 죽으며 항복했거늘, 무명(無名) 소장(小將)이 감히 큰 말을 하느냐?”
하고 모든 장수가 일시에 달려들거늘, 경업이 맞아 싸워 수 합(合)이 못 되어 선봉장 둘을 베고 진을 깨뜨려 들어가며 사면 복병(伏兵)이 일시에 내달아 깨뜨리니, 가달의 장수 죽채가 두 장수의 죽음을 보고 장창(長槍)을 들어 경업을 에워싸고 치니, 경업이 혹전혹후(或前或後)하여 도적을 유인하여 산곡 중으로 들어가니, 문득 일성(一聲) 포향(砲響)에 사면 복병이 내달아 시살(弑殺)하니, 적장이 황겁하여 진을 거두고자 하나 난군(亂軍) 중에 헤어져 대병(大兵)에 죽은 바 되어 주검이 뫼 같은지라.
≪임장군전≫, 작자 미상, 이복규 옮김, 41∼42쪽.
가달이 누구인가?
오랑캐의 한 종족이다.
가달과 조선의 전쟁인가?
아니다. 가달이 호국에 쳐들어왔다. 호국은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땅한 장수가 없던 명나라는 이시백을 따라 중국에 들어와 있던 임경업을 청병대장으로 보낸다.
임경업은 어떻게 이기는가?
임 대장의 기세에 가달은 혼비백산한다. 가달의 잔병은 도망조차 가지 못하고 목숨을 구걸한다. 임 대장은 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호국이 은덕을 잊고 용골대를 선봉으로 세워 조선을 침략한다.
조선은 대책이 있는가?
임경업을 의주부윤 겸 방어사에 앉힌다. 용골대는 그를 피해 함경도를 거쳐 도성으로 들어온다. 왕대비와 세자 대군을 볼모로 잡고 조선의 항복을 받는다. 임경업이 소식을 듣고 회군하는 적을 공격하려 했으나 세자 대군의 만류로 그만둔다. 그는 분기충천하여 복수를 다짐한다. 호왕은 그의 강직함을 보고 탄복하며 세자와 대군을 풀어 주며 그를 부마로 삼으려 한다.
호왕의 다음 행보는 어디인가?
호국은 여러 나라의 항복을 받고 기세등등해졌다. 곧 명나라와의 전쟁을 계획한다. 조선에 청병하여 임경업을 대장으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조선의 대답은 무엇이었나?
간신 김자점의 주청으로 조선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호국에 보냈다.
복수는 물 건너간 것인가?
아니다. 명나라와 내통하고 호왕에게 거짓 항서를 올리도록 했다. 거짓 항서는 호국 장수를 거쳐 호왕의 손에 들어가고, 임경업은 조선으로 돌아왔다. 호왕은 그것이 거짓 항서임을 눈치채고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 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충청도 속리산에 숨어들어 중이 되었으나 그곳에서 만난 승려 독보의 배신으로 호국에 잡혀간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의 충절에 호왕은 감복한다. 부마 제안을 받지만 조강지처를 생각해 거절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임경업이 조선으로 돌아오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김자점은 왕명을 사칭해 그를 잡아 가둔다. 왕이 사실을 알고 풀어 주었지만 김자점은 그를 죽이려 한다.
죽는가?
그렇다.
이야기는 끝난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왕의 꿈에 나타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왕은 날이 밝자마자 김자점을 국문하고 삼족을 능지처참할 것을 명한다. 임경업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내리고, 그를 따라 죽은 처 이씨를 기려 열녀비를 세워 준다.
이런 일이 역사에 있는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을 제외하면 여러 면에서 실제와 차이가 있다.
무엇이 다른가?
임경업의 생애, 김자점과의 관계다.
무엇이 허구인가?
첫째, 부친을 여읜 시점이다. 실제로는 39세의 일이지만, 소설에는 어려서 일을 당한 뒤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으며 어린 동생들을 보살폈다고 나온다. 둘째, 농업 종사 여부다.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없지만 소설은 농업에 힘썼다고 썼다. 셋째, 업적이다. 남경동지사를 수행하고 호국 청병대장으로 출전해 가달과 싸워 항복을 받고 돌아오는 대목과, 그 덕분에 호국에 끌려간 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오는 것도 허구다.
김자점과의 관계는 실제로 어떠했나?
병자호란 이전 둘의 관계는 아주 우호적이었다. 소설에서는 김자점이 역심을 품었으나 임경업이 두려워 숨겼다고 서술했다. 또한 임경업의 죽음으로 김자점이 제주도로 귀양을 가고, 임경업의 가족이 김자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임경업을 민중의 영웅으로 형상화하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간신 김자점을 허구로나마 응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독자의 반응은 어땠는가?
집필 시기로 추정되는 18세기부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갔을 때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에서 ≪수호전≫을 시끌벅적 읽는 중국인들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우리나라 시장 거리에서 ≪임장군전≫을 외는 것과 같았다고 한 대목이 ≪열하일기≫에 나온다. 심지어 낭독 현장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소설을 읽다가 살인이 일어난 연유는 무엇인가?
조선 후기의 문신 심노숭의 자서전에 자세한 경위가 나온다. “촌에서 소위 ≪임장군전≫이라는 언문 소설을 덕삼이가 가지고 왔으나 그는 치통 때문에 제대로 낭독하지 못했다. (…) 이것은 서울 담배 가게와 밥집의 불량배들이 낭독하는 언문 소설로 예전에 어떤 이가 이를 듣다가 김자점이 장군에게 없는 죄를 씌워 죽이는 데 이르러 분기가 솟아올라 담배 써는 큰 칼을 잡고 미친 듯이 낭독자를 베면서 ‘네가 자점이더냐?’라 하니 같이 듣던 시장 사람들이 놀라 달아났다.”
이 작품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한 자리는 어디쯤인가?
<임진록>, <박씨전>과 함께 대표 역사 군담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일어난 민중의 각성, 지배층에 대한 불신과 비판 의식을 허구의 형식으로 표현하되,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설득력과 감동력을 높였다. 특히 임경업의 자손이 김자점의 간을 꺼내어 씹는 장면은 우리 소설에서는 드문 복수담으로 후대 다른 소설에 영향을 끼쳤다.
당신은 어떤 판본을 어떻게 옮겼는가?
가장 널리 읽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경판 27장본을 주 대본으로 삼았다. 띄어쓰기를 했고 문장부호를 사용했으며 대화와 지문을 구분했다. 아래아나 겹자음, 받침 등의 표기는 현대어 맞춤법에 맞게 고치되, 고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원전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복규다.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