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向性(하향성)
미리 만나는 봄 1. 봄은 소리로 온다 ≪하향성≫
입춘(立春)
얼음장 풀리는가
계곡 물소리 들린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하산하는 발자국 소리 앞에
물보다 앞질러 가는 물소리
하얀 빛살까지 내보이며
주위를 일깨운다
티끌 하나 걸치지 않고
스스로 바위에 부딪히고
돌바닥에 엎어지면서
제철 만난 듯
아래로만 흐르는 맑은 물소리
나에게도 저런 세상의 소리 있었던가
가만히
소리 속에 귀를 넣는다
순간, 소리는 간 데 없고
귀만 멍멍하다
재빨리 귀를 빼고 돌아서
내 굳은 몸속에
물소리 한 가닥
소중히 간직해 보는
입춘 오후
박명용 육필시집 ≪하향성≫ 126∼129쪽
시인에게 봄은 소리로 온다. 얼음장 풀려 흐르는 맑은 물소리로 온다. 그래서 귀가 먼저 봄을 반긴다. 멍멍해도 좋다. 제철 만난 세상의 소리 한 가닥이 겨우내 굳은 몸을 휘감아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