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삼 시선
주기평이 옮긴 ≪잠삼 시선(岑參詩選)≫
문인들의 전쟁길
전쟁이 이어졌다. 벼슬길은 멀었다. 문인들이 전장에 나갔다. 변경을 오가는 종군길, 황량한 풍광과 전쟁의 참혹, 병사의 고통 그 가운데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변새시가 이렇게 시작된다.
하얀 눈의 노래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 판관을 전송하며
북풍이 땅을 휘말아 백초가 꺾이니
오랑캐 땅 8월이면 이내 눈이 날린다네.
문득 하룻밤 사이 봄바람이 불어온 듯
수많은 나무 하나하나마다 배꽃이 피었도다.
구슬주렴으로 흩날려 들어와 비단 휘장 적시니
여우 갖옷도 따뜻하지 않고 비단 이불도 얇기만 하구나.
장군의 뿔활은 당겨지지 않고
도호의 철 갑옷은 차가워 입기 어렵네.
넓은 사막은 이리저리 백 장이나 얼어 있고
먹구름은 어둑어둑 만 리까지 엉겨 있네.
군영에 술자리 벌여 돌아가는 객을 대접하니
호금과 비파 소리가 강적 소리와 함께하네.
저녁 눈은 어지러이 군영 문에 내리는데
붉은 깃발은 바람이 몰아쳐도 얼어 펄럭이지 못하네.
윤대의 동문에서 그대 떠나보내니
그대 떠나갈 때 눈은 천산 길에 가득하리.
산길 돌고 돌아 그대 보이지 않는데
눈 위에는 부질없이 말 지나간 자취만 남았어라.
白雪歌送武判官歸京
北風捲地白草折,
胡天八月卽飛雪.
忽如一夜春風來,
千樹萬樹梨花開.
散入珠簾濕羅幕,
狐裘不暖錦衾薄.
將軍角弓不得控,
都護鐵衣冷難著.
瀚海闌干百丈冰,
愁雲慘淡萬里凝.
中軍置酒飮歸客,
胡琴琵琶與羌笛
紛紛暮雪下轅門,
風掣紅旗凍不翻
輪臺東門送君去,
去時雪滿天山路.
山迴路轉不見君,
雪上空留馬行處.
≪잠삼 시선≫, 주기평 옮김, 123~126쪽
떠나는 무 판관은 누구인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잠삼이 안서북정절도판관으로 있을 때의 동료로 여겨진다.
여기서 오랑캐 땅은 어디인가?
북정(北庭)이다. 당 현종 때 정주(庭州), 지금의 신강 위구르자치구 기대현(奇臺縣) 서북쪽에 도호부를 설치했다.
잠삼이 이때 어떻게 북정에 있게 되었는가?
천보 13년(754), 40세에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 고선지(高仙芝)의 막부에 임명되면서 북정으로 가게 된다. 2차 종군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 시에서 ‘눈’이라는 단어는 어떤 역할을 하는 시의 장치인가?
시제와의 일치성과 각 단락의 유기적인 연결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는 매개다. 나열에 그치거나 산만할 수 있는 각 단락의 시상을 동일한 정서로 집중시킨다.
2, 3단락에는 눈이 없지 않나?
눈 대신 ‘배꽃’과 ‘먹구름’이 있지 않은가? 흩날리는 배꽃[梨]은 이별[離]을 암시한다.
이런 시를 ‘변새시(邊塞詩)’라고 부르는가?
그렇다. 변경의 황량한 풍광, 전쟁의 참혹한 모습과 병사들의 고통, 소수민족들의 풍습과 문물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다.
변새시는 언제부터 나타났는가?
당나라 현종부터 대종 때까지 전쟁이 빈번했다. 벼슬에 오르지 못한 문인들이 전장에서 공을 세워 꿈을 이루려 했다. 이들이 변새시를 창작했다.
변새시파에서 잠삼의 위치는 어디인가?
고적(高適)과 더불어 당대(唐代) 변새시파의 대표 시인이다. 변새시라는 영역을 확립했다.
잠삼의 변새시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천보 8년(749), 1차 종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장안에서 안서로 가는 길에 변경 지역의 기이한 산세와 이국적인 풍광을 담아 시를 썼다. 변새시의 시작이었다.
1차 부임과 2차 부임 때 쓴 시에 차이가 있는가?
1차 때는 원정길의 고난과 향수의 고통을 주로 그렸다. 2차 때에는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적인 안정과 상대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변방과 소수민족을 깊이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 다양한 변새시에 그려 잠삼 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향수와 고난은 어떤 모습이었나?
1차 종군 때 쓴 <서울로 가는 사신을 만나>에서는 “동으로 고향을 바라보니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두 소매 흠뻑 적셔도 눈물은 마르지 않네./ 말 위에서 그대를 만나 지필이 없으니/ 그대에게 부탁해 말로나마 잘 있단 말 전한다오”라 하며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또 <안서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이 판관을 전송하며>에서는 “이 몸 멀리 절도사를 따라/ 만 리 안서로 향했네./ 고국의 달에 고향 그리는 눈물 흘렸고/ 변방의 모래에 말발굽은 닳았다네. (…)”라 하며 향수와 더불어 변경 생활의 고난을 말했다.
잠삼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신당서(新唐書)≫나 ≪구당서(舊唐書)≫에는 그의 전기가 실려 있지 않다. 다른 전적(典籍)에도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로 인해 시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창작 시기 또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는 두보와도 함께 지냈는가?
부서는 달랐지만 간관(諫官)으로 관직 생활을 함께했다. 잠삼이 두보보다 세 살 아래다. <좌성의 두보에게 부쳐>라는 시도 썼다.
이 시선은 무엇을 저본으로 삼았나?
명대(明代)의 제남본 ≪잠가주시≫가 현존하는 잠삼 시집 중 가장 온전하면서 결점이 적은 판본으로 꼽힌다. 해당 책을 저본으로 하고 원문을 교감해 수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주기평이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