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채 동화선집
정진채가 짓고 이성천이 해설한 ≪정진채 동화선집≫
인간 천연의 몸빛
정진채가 본 인간의 본래 색깔을 우리가 확인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아침 해, 젖은 풀잎 그리고 가난한 마음이다. 사랑과 희생은 아침 이슬처럼 작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먼저 나처럼 꽃부터 만들어요. 그런 다음에 천천히 과일을 키우고 익혀야 하는 거야요. 그렇지만 그 일도 목숨을 거는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게지요. 아기 열매들을 손끝에 달고 팔이 휘어지는 아픔을 비바람 속에서 견뎌야 한다구요. 하지만 그 아픔이 가을날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야요. 한데, 당신은 꽃을 만들 수 없나요?”
돌감나무가 물었습니다.
“꽃이 싫어서요.”
무화선녀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옥황상제님에게 되돌아갈 수 있는 날이 더 멀어진 셈입니다.
그렇지만 무화선녀 나무는 그 편이 더 좋았습니다.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인간 세상은 변화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땅에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진채 동화선집≫, <무화과 이야기>, 정진채 지음, 이성천 해설, 14~15쪽
무화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사연은 무엇인가?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몰래 지옥 세계를 방문했다. 거기서 인간에게 인정을 베풀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다. 그 벌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고 인간 세상으로 떨어졌다.
천당과 지옥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는 단테의 주제가 아닌가?
이성천이 그 문제를 지적했다. “작품의 배경이 ‘하늘나라’에서 ‘지옥’을 거쳐 현실 세계로 전환된다는 측면에서 <무화과 이야기>는 일견 ‘지옥’에서 ‘연옥’으로 다시 ‘천국’으로의 시공간적 이동을 탄력 있게 전개했던 단테의 ≪신곡≫을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단테가 ≪신곡≫에서 자기 영혼의 성장 과정과 선악의 종교철학적 의미를 중층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면, 정진채는 <무화과 이야기>에서 집약적인 주제 의식으로 인간 삶의 이치를 명징하게 풀어낸다”고 보았다.
동의하는가?
≪신곡≫을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았다. 인간 본연의 삶을 쓰고 싶었다.
당신에게 인간 본연의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상처와 슬픔과 아픔의 연속이지만 그 변화가 의미를 갖는 삶이다. 의미 없는 삶은 이 세상에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과 기쁨, 갈등과 화해,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이 견인하는 다채로운 세계의 ‘변화’야말로 이 ‘땅’의 참모습이며, 인간의 행복이란 이 과정에서 시간의 축적을 통해 얻어진 값진 열매다.
당신의 동화는 어디를 향한 이야기인가?
인간의 본원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역동적인 삶의 이치를 풀어 간다.
이성천이 “동심으로 빚어낸 인간학”이라고 표현한 그곳인가?
인간을 믿을 수 있고 믿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눈으로 보는가,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는가의 문제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원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희생의 정신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천연의 이 ‘몸빛’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많은 작품이 자연을 이야기한다. 이유가 뭔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를 바란다. 예찬에만 치우친 숭배, 인간의 지배라는 틀 안에서 자연물을 배려하는 투의 오만함 등을 배제하고자 했다. 평론가도 적시했듯이 그러한 경향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사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하고자 했다.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자 했다.
생태동화라고 부를 수 있나, 그런 작품으로 어떤 것이 있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란과의 약속>은 “인간들의 가슴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샘솟게” 해 달라는 당부의 목소리를 담았다. <오리 여자>는 생태 오염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은 야생의 본성을 잃은 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흑띠>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에 이르기까지 목숨은 소중한 것”임을 강조했다.
현실에서 동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동화는 확실한 믿음과 참다운 용기, 가없는 사랑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환상과 현실의 아름다운 만남에서 빚어지는 향기 높은 동화는 우리의 내일을 열어 갈 청량제가 된다.
당신은 동화에서 어떤 냄새를 맡는가?
아침 이슬이다. 세상이 온통 흙탕물이라 해도 우리의 따뜻한 가슴속에서 이슬같이 맑고 깨끗한 샘이 솟는 한 희망이 있다.
당신이 ‘용왕의 아들’이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태어날 적부터 어머니의 팔자에는 내가 없다고 해서 어머니는 나를 용왕에게 팔았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용왕의 아들이라 불렀다. 어머니는 보름날이나 명절에 동네 앞 시냇물 가운데 놓인 큰 바위 옆에서 나를 데리고 용왕을 먹였다.
‘용왕을 먹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용왕에게 대접한다는 뜻으로, 주로 불교인들이 쓰는 표현이다. 용왕을 먹일 때마다 나는 색 헝겊을 둘러친 바위와 그 아래 시퍼렇게 맴도는 시냇물에 압도되어 부지런히 절을 올리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장소가 ‘고이방골’이라 간혹 내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부산과 당신의 인연은 어떤 것인가?
1972년 가을, 부산의 원로 이주홍 선생과 조유로 선생을 모시고 부산아동문학회를 창립했다. 초대 회장 일을 봤다. ≪부산아동문학≫을 창간했다. ‘부산문예대학’을 만들었고 동화, 소설, 수필, 시 강좌를 열었다. 그곳에서 문인 300여 명이 나왔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진채다. 본명은 정한길이다. 시인이며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