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을 평가한다 1. 살고 싶다면 죽어야 한다.
종편을 평가한다 1. 살고 싶다면 죽어야 한다.
종편은 살아 있는가?
밥은 한 그릇인데 입은 네 개가 넘는다.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보리나 옥수수를 섞어 양을 늘린다. 허기는 여전하다. 방송사도, 시청자도 위기이고 불만이다.
종편을 왜 만든 것인가?
우리나라의 방송 제도는 1981년부터 신문과 방송 겸영이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 신문사들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방송 겸영을 탐내기 시작했다. 2008년 정부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대기업의 자본 인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방송 시장의 산업적 요구가 종편 출범의 명분으로 제시되었다.
방송 시장의 산업적 요구 내용이 뭔가?
첫 번째는 방송 산업의 경쟁력 강화다. 두 번째는 시청자 복지 증진이다. 세 번째는 콘텐츠와 뉴스의 다양성 확보다.
실현 가능한 목표였나?
국내 방송과 미디어 시장 여건을 무시한 채 종편을 너무 많이 허가했다.
현실성에 대한 논의는 없었나?
2000년 이후 방송 광고 시장은 답보 상태였다. 일부 PPL 광고는 좀 늘어났지만 전반적으로 광고 시장 규모가 GDP 성장률과 관계없이 쇠퇴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가 등장했을 때 그들이 시장에서 존립할 것인가, 광고라든지 다른 재원이 뒷받침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네 개 사업자가 등장한 것이다.
사업자가 네 개씩이나 존립할 수 있는 조건이었나?
한국 시장에서는 한 개 종편 사업자의 생존 조건은 매출액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 정도다. 그렇다면 총 시장 규모가 4000억 원에서 6000억 원 정도 되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디어 관련법 개정 당시 찬성론자들도 우려했던 내용이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이었나?
종편 한두 개 정도라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가 너무 많고, 사업자는 1년 동안 내걸었던 목표와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이제 결과를 평가하면 몇 점을 줄 수 있는가?
jtbc를 제외하면 제작비가 적게 드는 프로그램이나 뉴스, 토론 프로그램을 과잉 제작함으로써 다양한 콘텐츠 제공에 실패했다. 지상파방송사와 경쟁에서 뒤졌고 방송의 공정성 또는 다양성 문제에도 커다란 결함이 생겼다.
종편의 공정성 또는 다양성의 결함은 무엇인가?
채널A와 TV조선은 한두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은 전부 뉴스에 몰입하는 경향이 생김으로써, 실제 방송 시장 활성화에 커다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도리어 tvN같은 CJ에서 운영하는 오락 프로그램 몇 개는 지상파방송을 긴장시켰다. jtbc를 제외하고는 그런 면에서 지상파방송과 경쟁 시스템에서 밀렸다고 본다.
긍정 측면은 무엇인가?
jtbc는 프로그램의 질적 완성도, 인기도, 새로운 접근이라는 면에서 긍정 평가를 받을 수 있다. mbn이 떼토크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무엇이 종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가?
수익성이다. 현재 네 개의 종편 사업체는 수입을 보장하기 힘들다. 종편 사업자가 다양하고 공정한 뉴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000억 원 가까운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시장 구조가 아니다.
대안은 뭔가?
나는 인수 합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종편의 인수 합병은 어떤 내용의 변화인가?
인수 합병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신문 사업자들이 고민해야 한다. 생존하려면 새로운 영업 전략을 개발하거나 M&A를 통해 더 커지거나 작아져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 왔다.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는 무엇인가?
문제는 신문 사업자들이 이제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보다는 기존의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 양산을 통해 자기의 생존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갈 것 같다.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을 자기 생존 유지 전략으로 이용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산업이나 시청자 복지 증진 같은 애당초의 목표를 실현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의미다. 뉴스와 토론을 많이 하다 보니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의 뉴스가 양산된다.
고연령층 뉴스가 많아지는 것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 여러 계층 또는 여러 연령대의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옳은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역행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가?
언론은 사회적 감시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그런데 종편의 고연령층 겨냥 뉴스의 양산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기는커녕 사회적 갈등을 노출시키고 재현하는 데 더 열심이다.
종편 재심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과거보다는 앞으로가 더 문제다. 대부분 방송 사업자들이 허가 신청할 때의 말과 실제 방송 운영이 다르다. 앞으로는 조건부 허가 조건을 내세워야 한다.
조건부 허가 조건이란 뭘 말하는가?
재허가를 하더라도 1, 2년 내에 실현가능한 계획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제작과 편성 비전을 올바로 제시하고 실행하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1년 또는 더 짧은 기간 동안 재허가의 조건을 잘 감시해서 실행 여부에 따른 약간의 강제 조치가 필요하다.
방송 시장 전체에 필요한 강제 조치는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방송 광고 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 유료 방송 시장도 저가 구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제작에 투입할 재원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콘텐츠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방송 재원 정책이 중요하다.
방송 재원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국가가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수신료 문제, 광고비를 확충하기 위한 규제 완화, 저가형 유료 방송 시장을 어떻게 정상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는 우리나라의 방송 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어렵다. 이런 문제 해결책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사업자들이 지나치게 난립하는 구조는 어떤가?
이 문제는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선의의 개입을 통해서 M&A를 유도하거나 지역 방송을 광역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석년이다.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