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천줄읽기
김지원이 뽑아 옮긴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 주홍 글자 천줄읽기(The Scarlet Letter)>>
글자 ‘A’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처음엔 간통이나 간음녀를 가리켰다. 아담 또는 아서의 사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에이블을 암시하더니 결국 천사와 사도의 첫 글자가 되었다. 악은 선이 되고 속은 성이 되었다.
그러나 헤스터 프린에게는 펄이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미지의 땅보다는 여기 뉴잉글랜드에 더 진실한 삶이 있었다. 여기에 그녀의 죄가 있었고, 여기에 그녀의 슬픔이 있었으며, 또한 여기에 아직도 참회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되돌아왔고, 우리가 지금껏 서술한 음울한 이야기에 나오는 그 상징을 자진해서 다시 달았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먼 훗날, 킹스 채플이 세워진 곳에 인접한 묘지 구역 안에, 새 무덤 하나가 오래되어 움푹 내려앉은 옛 무덤 옆에 생겼다. 이 두 무덤 사이에는 그 밑에 잠든 두 유해가 서로 합칠 권리가 없다는 듯이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묘비만큼은 두 무덤에 하나로 족했다. 주변에는 근사한 문장(紋章)이 새겨진 비석들이 즐비했으나, 석판 한 장으로 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 묘비에는 방패 모양의 문장 비슷한 것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날에도 호기심 많은 관찰자가 그것을 발견하면 그 뜻을 몰라 당혹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에 대한 문장관(紋章官)의 한마디 표현은 이제 막 끝낸 전설의 제사(題辭)이자 그에 대한 간단한 기술(記述)일 것이다. 그 문장은 매우 어둠침침했으며 오직 끊임없이 타오르는 주홍빛 한 점만이 그 어두움을 덜어 주었으나, 실상 그 빛은 그림자보다도 더 음산했다.
“검은색 바탕에 주홍색 글자 A”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지원 옮김, 208~209쪽
마지막 장면인가?
헤스터는 딤즈데일 것으로 보이는 무덤 옆에 거리를 두고 나란히 묻혔다. 그 앞에 선 두 묘비에 대한 묘사다. 묘비명은 “검정색 바탕에 주홍색 글자 A”다.
그녀와 주홍 글자의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는가?
살아서 주홍 글자를 가슴에 붙이고 다녔다. 죽어서 그 글자가 새겨진 비석 아래 잠들었다.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글자 ‘A’는 무엇인가?
A는 보스턴 주민들 사이에서 ‘간통(Adultery)’ 혹은 ‘간통을 범한 여자(Adulteress)’였다. 그러나 그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처음에는 인류 최초의 죄인인 ‘아담(Adam)’이나 헤스터의 간통 상대인 딤즈데일 목사의 이름인 ‘아서(Arthur)’의 첫 글자를 나타냈다. 그러다가 점차 자원봉사자로서 그녀의 능력을 함축하는 ‘능력 있음(Able)’을 가리키게 된다. 작품 끝에 가서는 성스럽게 변모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 주는 ‘천사와 사도(Angel and Apostle)’의 상징으로 바뀐다. 주홍 글자가 제 직분을 다했을 때 그녀는 사회의 유대와 지속의 대행자가 된다.
그녀가 뉴잉글랜드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판결의 내용은 A자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활 반경을 보스턴이나 그 인근으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딸인 펄이 살고 있는 유럽 대륙으로 이주하거나 미국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헤스터는 돌아와 A자를 스스로 단다. 그곳에 사랑의 추억과 삶의 의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사람들이 하나같이 숨을 죽인다. 죄수 헤스터 프린이 문제의 주홍 글자를 가슴에 붙이고 걸어 나올 감옥 문에 호기심 어린 눈을 고정한다. 문이 열린다. 주홍 글자 A를 가슴에 달고 그녀가 나타난다. 가슴엔 생후 3개월 된 펄을 안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걸어 나와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 길고 깊은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보는가?
그녀의 앞가슴에 달린 A자다. 그들은 개척 시대의 근엄한 청교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작중인물이다.
간통한 여인은 청교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예전과는 판이하게 변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다. 병간호를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삯바느질도 한다. 근심 걱정이 가득한 집이면 어디든 그녀는 찾아든다. 근심이 사라지고 새로운 빛이 비치면 그녀의 모습도 사라진다.
≪주홍 글자≫에 대한 미국 지성의 평가는 무엇인가?
헨리 제임스는 치밀한 구성과 심오한 주제를 지닌 이 소설을 미국에서 이제까지 나온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평했다. 허먼 멜빌은 ≪문학 세계≫에 익명으로 <호손과 그의 이끼>라는 제목의 평론을 싣고 그를 칭찬했다.
미국 대중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주홍 글자≫ 초판 2500부가 권당 75센트에 팔리면서 호손의 명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의 장편 로맨스 ≪주홍 글자≫는 미국 문단의 지축을 흔들었다. 일대 사건이었다.
호손이 개발한 독특한 로맨스 장르의 특징은 무엇인가?
로맨스에서 그가 그려 내는 주도적인 비전은 인간의 어두운 영혼이다. 그런 비전을 모든 도덕적 복잡함 속에서 포착해 적절한 형식으로 미국의 로맨스를 개발해 냈다. 개발 이전 당대 미국 문화의 조야한 풍토에서 새로운 로맨스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의 문학은 어느 정도 미국적인가?
미국적 체험이 극적 명암을 지닌 미학적 체험으로 승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한 것인가?
한 유부녀가 범한 간통 이야기지만 작품은 그 선을 뛰어넘는다. 죄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헤스터는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청교도 사회에서 보면 중죄인이 아닌가?
그녀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났다. 평생 치욕스러운 글자를 가슴에 달고,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게 살아간다. 간통 상대인 딤즈데일의 죄는 똑같이 간통이지만 감추어진 죄다. 그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마침내 죽기 직전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는다.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는 무엇인가?
죄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 악마로 변신해 딤즈데일을 괴롭힌다. 칠링워스의 죄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인간 마음의 신성함을 짓밟은 것이다.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단죄하지 않는다. 헤스터와 딤즈데일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칠링워스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주홍 글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국내 번역본 수는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파악하기 불가능할 만큼 다양하다. 대략 90종 이상일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만도 50여 종이다. 외국 문학 가운데 우리말 번역본이 가장 많은 작품 중 하나다. 한국 독자들이 호손과 친숙해진 것은 그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오랫동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덕분일 것이다.
≪주홍 글자≫가 한국 독자의 심금을 울린 이유는 무엇인가?
청교도 사회는 간통한 여인을 죄인으로 낙인찍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중이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만들곤 한다. 이른바 ‘주홍 글자’가 난무하는 것이다. 이런 공감이 대중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주홍 글자’를 ‘주홍 글씨’로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역 때문이다. 한국에서 번역 문학이 탄생한 초창기부터 이 소설은 ‘주홍 글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아마 1953년에 나온 최재서의 ≪주홍 글씨≫가 그 효시일 것이다. 이후 그 명칭은 관례적으로 마구 사용되어 왔다. 지금은 호손을 대신하는 고유명사나 상징으로 아예 굳어 버린 느낌이다.
‘글씨’와 ‘글자’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저자인 호손이 <세관>에서 밝히고 있다. 원제에서 ‘Letter’가 가리키는 것은 그가 낡은 세관 건물 2층 구석방에서 발견한 A라는 글자를 가리킨다. 이 A는 어디까지나 ‘Adultery’ 혹은 ‘Adulteress’의 이니셜이다. 구체적인 글자를 나타내는 것이지 추상명사인 글씨, 즉 writing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시중의 대부분 번역서가 이 소설의 서장을 싣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소설의 서장에 해당하는 <세관>이 번역 과정에서 대부분 빠져 있다. 물론 <세관>을 쓴 시점이 본 로맨스의 창작 시점과 다르고 호손이 별도의 작품으로 이 스케치를 썼다. 그러나 출판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분명히 ≪주홍 글자≫의 서장으로 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번역본에서는 거의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내가 발견한 수십 종의 원서 중에서는 <세관>이 빠져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미국 소설사에서 호손의 위치는 어디인가?
미국 소설의 원조다. 185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포, 멜빌, 롱펠로, 에머슨 등과 함께 미국 문학 전통의 수립에 크게 기여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40% 발췌하면서 선택과 옮김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나?
전체를 균형 있게 발췌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이 작품의 핵심 내용을 쉽고 빠르게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지원이다.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 호손과미국소설학회 회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