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 단편집
임정연이 엮은 ≪지하련 단편집≫
프티 부르주아를 위한 변명
식민지에서 사회주의 운동가는 투옥되고 전향한다. 해방이 되었으나 기쁨은 없다. 우와 좌,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헤매는 자신을 볼 뿐이다. 세상은 컸고 인간은 작았다.
그는 기철이 주는 붓을 받어, 먼저 주소와 씨명을 쓴 후, 직업을 썻다. 이젠 ‘게급’을 쓸 차레였다. 그러나 그는 붓을 멈추고 잠간 망사리지 않을 수가 없다.
투사도 안이요, 혁명가는 더욱 안이었고…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운동자−모도 맛지 않는 일홈들이다. 마침내 그는 ‘小뿌르조아’라고 쓰고 붓을 놓앗다. 그리고는 기철이 뭐라고 허든 말든 급히 밖으로 나왔다.
<도정>, ≪지하련 단편집≫, 임정연 엮음, 198쪽
그는 무엇을 쓰고 있는가?
공산당 입당원서를 쓰고 있다.
계급란에 소부르주아라고 쓴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 석재가 투사도, 혁명가도, 공산주의자도 되지 못한 자신을 비판, 반성하는 의미다.
그는 어떻게 살아온 인간인가?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하다 전향한 전력이 있다. 시골에서 자책과 회한에 젖어 살다가 해방을 맞아 공산당 재건 소식을 듣는다.
해방은 그에게 무엇으로 다가오는가?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당의 행로에 뜻을 같이하지도 못한 채 방황만 거듭한다. 기철을 보고서는 공산당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기철은 누구인가?
“돈이 제일일 때 돈을 모으려 정열을 쏟고 권력이 제일일 땐 권력을 잡으려 수단을 가리지 않”던 기회주의자다.
그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
광산 브로커에서 공산당 최고 간부가 되었다. 사이비 공산주의자다.
제목 ‘도정(道程)’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방 후 이념 혼란 속에서 민족의 갈 길을 살피고 역사의 진로를 모색하는 지식인의 성찰과 각성 과정을 의미한다.
석재가 반영하는 당시 지식인의 내면은 무엇인가?
1940년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패배한 이념과 좌절된 이상만을 자조적으로 곱씹으며 만조(晩照)의 여운 속에 자폐적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특히 카프 해산 이후 좌절과 무력감에 시달리던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현실로부터 추방시키고 내면의 감옥에 유폐했다.
석재의 도정은 어디를 향하는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영등포로 향하면서 자신만의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다.
결심은 <도정>을 열 수 있는가?
결단을 통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인물을 통해 추상적 수준에서나마 역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방황과 모색을 멈추고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지식인의 의무임을 상기시킨다.
당대의 평가는 어떠했는가?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조선문학상 소설 부문 추천작으로, 좌우 논단을 막론하고 다양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성과 예술적 박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상작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해방을 맞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소시민적 지식인의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거의 유일한 작품”(≪문학≫ 3호, 1947. 4)으로 평가받았다. 지하련의 문학 역량이 인정받은 셈이다.
지하련이 남편 임화와의 관계를 소재로 쓴 소설은 어떤 것인가?
<결별>, <가을>, <산길>은 실제로 백철에 의해 ‘모델소설’로 규정되기도 했다. 남편 임화의 염문설 등을 근거로 이 소설의 인물들과 실제 인물을 오버랩시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세 작품은 ‘아내-남편-아내의 친구’라는 삼각 구도를 공통으로 설정하고, 이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암시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묘한 긴장 관계의 암시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소설들에서 주목할 것은 ‘사건’이 아니라 자기의 내부를 향하는 작가의 ‘시선’이다. 즉 남편의 연애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인물의 시각, 더 정확하게는 인물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 연애 사건 자체는 서사의 프레임 밖에 밀려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허위의식, 그리고 결혼 제도의 불합리성을 역설하는 여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라’인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탐색하고 ‘신가정(新家庭)’의 실체를 해부함으로써 결혼 제도의 허위와 보수성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하련은 사랑과 신뢰, 평등이라는 근대적 원리에 입각해 이상적으로 추구된 근대 가정(home)이 실제로 여성에게 그리 ‘스위트(sweet)’한 공간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임화와는 어떻게 만났나?
대지주이면서도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으로 일찍이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떴다. 이런 배경에서 임화는 같은 길을 가는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미래를 기약하게 되었던 것이다. 임화는 자식이 있는 기혼자였지만 이혼 후 1936년 지하련과 재혼했다.
무엇이 그녀를 작가의 길로 인도했는가?
남편으로 인해 형성된 문학적 분위기와 문인들과의 교류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1938년 상경 후 서정주, 최정희 등 임화의 주위에 몰린 많은 문인들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등단작은 무엇인가?
폐결핵으로 고향에서 혼자 투병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백철의 추천을 받아 1940년 12월 ≪문장≫에 ‘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단편 <결별>을 발표했다. 문단에 나올 때부터 사적인 배경과 재능, 미모로 많은 시선을 모았다.
해방 후의 행적도 임화를 따르는가?
1947년 좌파 문인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면서 그녀는 월북한 임화를 뒤따른다. 1948년에 유일한 창작소설집 ≪도정≫(백양당)이 출판되었는데, 정황상 그 이전에 월북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생활은 어떠했나?
북한 측 자료에 의하면 1953년 남로당 숙청으로 임화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만주 땅에서 전해들은 지하련이 남편의 주검을 찾기 위해 평양 시내를 헤매 다니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사망 연도와 관련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평북 희천 근처 교화소에 수용된 후 1960년 초에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정연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