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사선
2454호 | 2015년 2월 17일 발행
송나라 사람, 진관의 사
송용준이 옮긴 진관(秦觀)의 ≪진관 사선(秦觀詞選)≫
송나라 사람, 진관의 사
사는 시가 아니다.
곡에 붙이는 가사를 가리킨다.
진관의 노래는 우아함으로 저속함을 구제했다.
골력과 기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감상이 절제를 잃지 않았다.
踏莎行 유배지의 고독과 슬품
霧失樓臺, 안개 자욱하여 누대는 사라지고
月迷津渡, 달빛 희미하여 나루터 보이지 않아
桃源望斷無尋處. 도원(桃源)을 바라보아도 찾을 길 없구나.
可堪孤館閉春寒, 외로운 객사에 갇혀 봄추위를 어찌 견딜까?
杜鵑聲裏斜陽暮. 두견새 소리에 석양은 저문다.
<유배지의 고독과 슬픔(踏莎行)>, ≪진관 사선≫, 진관 지음, 송용준 옮김, 83쪽
작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유배 중이다. 송나라 소성(紹聖) 4년, 1097년의 봄에 침주에서 이 사를 지었다. 고독과 슬픔을 토로한다.
진관은 어떤 사람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에서만 지냈다. 세상과 교제가 없었고 책에 빠져 공부에만 골몰했다. 그런 생활은 그의 성격을 유약하게 만든다.
왜 그곳에 있게 되었는가?
불서(佛書)를 썼다는 모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배되어 침주에서 1년을 지낸다. 그의 정서는 침울하게 바뀌었고 처완한 필조로 유배지의 황량함과 고독한 생활을 묘사한다. 유배의 원망도 보인다.
처완한 필조는 진관의 특징인가?
원래 유약한 성격이었으나 정치적 풍파를 겪으면서 시(詩), 사(詞) 속에 더욱 암울한 정서가 반영된다.
유배 이전 진관의 작품은 어떤 분위기였는가?
함축적이면서도 정과 운치가 뛰어났다. 그의 정은 연정(戀情)과 염정(艶情)뿐만이 아니고, 신세지정(身世之情)과 폄적지정(貶謫之情)을 포함하고 있었다.
신세지정, 폄적지정이란?
자신의 신세와 운명에 관련된 쓸쓸하고 슬픈 감정이다. 진관은 이것을 연정의 주제와 결합시킴으로써 전대(前代)의 완약사(婉約詞)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 ‘완약’이란 ‘호방’과 대비되는 용어로, 문체가 함축적이고 완곡하다는 뜻이다.
진관의 진일보는 어떤 것인가?
초기 완약사는 순수한 염정사로 만남, 이별, 원망만을 전문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다 유영(柳永)에 이르러 점차 경계가 넓어져 이별의 정을 묘사하는 가운데 뜻을 펴지 못한 자신의 나그네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다 진관의 사에 이르러서 부분적인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정치적 운명에 관련된 인생 감개를 완약사의 몸뚱이에 곁들여, 새로운 혈액을 주입했다.
‘사(詞)’란 어떤 장르인가?
노래로 부르기 위해 쓴 가사다. 시체(詩體)지만 시와는 조금 다르다.
무엇이 시와 다른가?
시 중에 근체시(近體詩)는 글자 수, 구절 수, 압운 등 제목과 상관없이 고정된 격식이 있다. 반면에 사는 제목에 따라 격식이 각기 다르다. 시는 제목이 형식을 제약하지 않지만, 사의 제목은 형식을 제약한다. 제목이 다르면 노래로 부를 때의 곡조가 달라진다.
사의 제목은 곧 멜로디를 말하는가?
그렇다. 따라서 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제목 아래 하나의 작품만 존재하지만, 사는 하나의 제목 아래 여러 개의 작품이 존재한다. 사의 제목이 멜로디의 타이틀이므로, 하나의 멜로디 아래 여러 개의 가사가 발생한다.
일곡다사의 예를 들면?
시에서 ‘춘망(春望)’이라는 제목을 주면 두보(杜甫)의 시 <춘망>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사에서는 ‘소년유(少年游)’라는 제목을 주면 어떤 멜로디인지만 알 뿐 누구의, 어떤 가사를 가진 작품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 제목을 쓴 작가가 수백 명이기 때문이다.
진관 사의 특징이 무엇인가?
진관의 사는 현존하는 것이 110수 정도다. 유영이나 소식처럼 많지 않지만 뛰어난 운치를 부드럽게 표현했다. 우아함으로 저속함을 구제했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후대 사람들이 그를 완약사의 대표 작가라 한 것은, 이런 ‘우아한 사람과 통속적인 사람이 함께 즐기는’ 풍격이 근거였다.
후대의 평가는?
그의 사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골력과 기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진관 이후에 등장한 주방언과 이청조는 진관 사의 유약함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감정과 언어를 자연스레 융합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송용준이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