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진 동화선집
어른을 위한 어린이날 특집 4. 날개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진은진이 짓고 이도환이 해설한 ≪진은진 동화선집≫
갈 수 없는 곳
연탄집 할매는 두고 온 딸을 만날 수 없다. 38선 때문이다. 죽은 자리라도 봐야 하고 묘라도 써야 할 텐데 갈 수가 없다. 날개라도 있으면 날아 볼 텐데.
“할매, 우리 소풍 가예.”
“원족 가네?”
“원족?”
“고저 옛날에는 소풍 간다고 안 하고 원족 간다 기랬디.”
“그라몬, 할매도 원족 가 봤는교?”
“내레 어릴 적엔 원족이 다 뭐이가. 우리 막둥이 에미나이가 너만 할 때 보내 봤디.”
“그때도 김밥 싸 갔는교?”
“주먹밥이랬어. 보통 때는 보리밥을 먹지만서두 원족날은 보리쌀에 쌀을 좀 섞어서리 주먹밥을 만들어 주디. 주먹밥을 만들고 있으만 어뜨케나 좋아라 하던디. 와서 보고, 또 보고 기랬디.”
할머니가 또 우실 것만 같아서 영순이는 다른 얘기를 하기로 합니다.
“엄마가 밤도 싸 줬어예.”
“우리 고향 집 뒤에두 부모님 모신 산이 있었더랬는데 밤나무가 얼마나 많았댔던지, 우리 에미나이레 가을이 되만 산에서 살았댔디.”
“북한에도 산도 있고 밤나무도 있는교?”
영순이는 북한에는 탄광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책에 나오는 북한 사람들은 아이건 어른이건 다 채찍을 맞으면서 탄광에서 일만 했거든요.
“와? 너희 고향에는 없었네?”
“와예, 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많았어예. 우리도 요맘때가 되마 작대기 들고 감 따러 안댕깄는교? 어른들이 장에 내다가 돈 해야 되는데 감 다 상한다고 호통을 치고 그랬어예.”
“우리 에미나이레 지금 살았으만 시집가서 아주마이가 됐실 기야. 난리 통이라 제대루 묻어 주지두 못하구 왔는데.”
할머니는 또 우십니다. 할머니가 우는 것은 너무 싫습니다. 할머니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입니다. 조각칼로 파낸 것만 같은 깊은 주름들이 온 얼굴에 엉켜 있습니다. 할머니가 눈물 치마로 찍어 내기 전에 한 방울이라도 흐를라치면 눈물은 그 잎맥 같은 주름들을 따라 온 얼굴에 퍼져 버립니다. 그러면 금세 할머니 얼굴은 눈물투성이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할머니 얼굴의 주름은 아마 그렇게 생긴 눈물 길로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고 영순이는 생각합니다.
“할매는 와 만날 우는교?”
“우리 에미나이레 죽은 자리라도 가 봐야디. 뻬라도 남았시만 무덤이라도 만들어 줘야디 않간?”
“가몬 안 됩니꺼.”
“가게 해 줘야 갈 거 아이가? 고저, 잡혀가드래도 삼팔선만 없으만 가 볼 긴데 말이야.”
“날개가 있시마 좋을 긴데….”
“덩말이디 날개라도 있시마 좋겠구나야.”
<할머니의 날개>, ≪진은진 동화선집≫, 진은진 지음, 이도환 해설, 8~10쪽
누구인가, 이들은?
고향이 이북인 연탄집 할매와 시골 살다 상경한 영순이다. 둘은 모두 고향이 그립다.
둘의 사투리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낯선 말을 쓰고 있지만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통일 담론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반공이데올로기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이념적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통일을 이념이 아닌 길로 이야기하겠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념을 넘어서려면 개별 삶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잃었건, 산업화로 인해 고향을 떠나와야 했건, ‘실향민’이라는 점은 같다.
영순에게 실향민이란 뭔가?
그는 어린이다. 통일은커녕 할머니의 슬픔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이다운 천진함으로 할머니의 슬픔에 공감한다. 보고 싶은 고향 친구들, 그리운 고향집, 낯선 타향살이는 영순이가 경험하는 일상이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할머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믿는다.
통일, 실향, 우정, 이 가운데 작품의 주제가 있는가?
할머니와 영순이 사이의 우정을 읽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읽든, 분단의 아픔을 읽든, 통일의 염원을 읽든, 그건 다 독자 몫이다.
독자 몫이란 주제가 없다는 말인가?
해설자 이도환은 내가 독자에게 주제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기 말을 줄일 필요가 있다.
주제 의식이 박약한 결과는 아닌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 스스로도 할머니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 독자들이 영순이처럼 각자의 경험에 따라 더 잘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할머니와 영순의 우정, 그 끝은 무엇인가?
연탄집 할매가 세상을 뜬다. 희망적인 결말을 맺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죽음밖에 없었다.
영순이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할머니의 죽음을 영순이는 슬퍼하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믿는다.
어린이들이 정말 그렇게 순진한가?
그들은 삶과 죽음, 상상과 현실을 서로 다른 것으로 않는다. 신화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사고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도환이 말하는 “자연을 닮은 서사”와 같은 것이다. 어차피 신화란 자연의 질서를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에 등장한 할머니는 누구인가?
하반신이 마비된 할머니다. 인희와 같은 병실을 쓴다. 인희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마고할미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마고할미는 어떻게 생겼는가?
우리 창세 신화의 인물이다. 광대뼈가 불거진 골상에 손발이 크고 검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한 할미라 한다.
마고할미가 병든 이유가 뭔가?
천지창조의 여신인 ‘마고할미’가 아니라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늙고 병들었지만 나를 비롯하여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 냈던 존재다.
할머니를 말하면서 왜 할아버지는 없는가?
둘은 사회 지위가 다르다. 남성인 할아버지는 연장자의 권위를 가진다. 할머니는 노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중 굴레를 안고 있다.
어린이와는 어떤 관계인가?
할머니는 어린이와 가부장적 질서의 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감성을 공유하는 점이 많다.
언제 동화를 시작했는가?
대학교 1학년 때, 철거촌 탁아소에서 활동을 했다. 그때,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동화를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습작기에는 철거촌 아이들 이야기를 썼다. 80년대 문학의 흐름이 그러했고, 개인적으로 문학은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함이 있었다.
강박에서 벗어났는가?
도덕책과 동화의 차이를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면서 철도 들었고.
당신은 누구인가?
진은진이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