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옌 끼에우 천줄읽기
아시아 고전 특집 5. 베트남 편
안경환이 옮긴 ≪쭈옌 끼에우 천줄읽기≫
베트남의 모든 인생이 이 책에 있다
태어나는 것을 운명이라 하고 살아가는 것을 인생이라 한다면 불행에서 시작되는 운명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베트남 사람들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책 때문이다.
이제 비녀는 부러지고 거울은 깨어졌으니
임 향한 내 사랑을 어찌 형용할 수 있으리!
내 운명은 왜 이리 박복한지?
흐르는 물에 맡겨진 꽃잎 같은 신세로구나.
≪쭈옌 끼에우 천줄읽기≫, 응우옌주 지음, 안경환 옮김, 142쪽
지금 누가 말하는 것인가?
여주인공 투이끼에우가 여동생 투이번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비녀와 거울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둘 다 연인 간에 정표로 나눠 갖는 것이다. 그것이 부서졌다는 것은 인연이 깨졌다는 뜻이다.
연인은 누구인가?
이웃집 서생이자 남동생 브엉꽌의 친구인 낌쫑이다.
인연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봄바람 쐬러 나간 길에 마주쳤다. 첫눈에 반한 낌쫑이 옆집에 세를 얻는다. 그녀가 떨어뜨린 비녀를 돌려주면서 가까워진다. 마침내 서로 혼인을 맹세한다.
그런데 어쩌다 떠내려가는 꽃잎 신세가 되나?
부친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구하려면 400냥이 필요하다.
그때 낌쫑은 뭘 했나?
숙부의 장례 때문에 멀리 떠났다. 돌아왔을 때 끼에우는 이미 마잠신이라는 사람에게 첩으로 팔려 갔다.
첩으로 끝나는 것인가?
알고 보니 첩이 아니라 청루의 창기로 팔려 간 것이었다. 그 뒤로도 첩이 되었다가 본처에게 납치당해 종이 되고, 도망쳐 나왔다가 속아서 팔려 가고, 새 남편을 얻었으나 남편이 죽고 죄인이 된다.
운명이 왜 그렇게 박복한가?
땀헙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길흉화복은 하늘의 도일지니
그 근원은 인간의 마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우리의 마음에 하늘 또한 있는 것이니
수행은 복의 근원이요, 정은 원한의 사단이라.
투이끼에우는 재치 있고 영리하지만,
불행이 미인의 팔자로 정해져 있음이라.
팔자를 고칠 방법은 없나?
운명에 순응해 참고 견디면서 공덕을 쌓아 업을 씻으면 불행이 끝나고 복이 온다.
끼에우는 공덕을 쌓는가?
부친을 위해 몸을 팔아 효를 다했다. 반란을 일으킨 네 번째 남편 뜨하이에게 항복을 권해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했다. 그 공덕으로 가족과 재회하고 낌쫑과 결혼한다.
이것이 무슨 세계관인가?
당대 주류 사상인 유(儒), 불(佛), 선(仙)이 섞였다. 전생의 업보를 선행으로 갚는 것은 불교고, 충효를 강조하는 것은 유교다. 끼에우가 꿈에서 선녀 담띠엔을 만나는 것은 선교다.
작품 배경이 뭔가?
청나라 청심재인(靑心才人)이 쓴 통속 소설 ≪금운교(金雲翹)≫를 응우옌주가 쯔놈 문자로 축약 번역해 운문시로 개작했다. 처음 제목은 ‘창자를 끊어 내는 새로운 소리’라는 뜻의 ≪도안쯔엉떤타인(斷腸新聲)≫이었는데 책으로 출간하면서 ≪낌번끼에우 떤쭈옌(金雲翹新傳)≫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보통 끼에우 이야기, 곧 ≪쭈옌 끼에우≫라고 부른다.
당대의 반응은 어땠나?
응우옌(阮) 왕조 제2대 황제인 민망은 이 작품에 심취해 관리들에게 암송하도록 했으며, 한림원 학사들에게 필사해서 후대에 전하도록 했다. 제4대 뜨득 황제 때에는 황제가 국가 대소사를 의논하는 곳에서 이를 감상하고 시를 짓도록 했다.
요즘은 어떤가?
베트남 사람들은 이 작품 안에 자신의 운명이 전개되고 있다고 믿을 정도다. 영화, 연극, 창, 판소리, 회화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쭈옌 끼에우≫를 경전으로 간주하는 ‘끼에우 점’이 있을 정도다.
≪쭈옌 끼에우≫의 무엇이 베트남을 그토록 사로잡았나?
첫째는 스토리 전개 과정의 박진감이다. 논픽션 같은 삶의 모습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둘째로 쯔놈 문자로 쓴 베트남 문학의 정수라는 점이다. 고유 문자로 쓴 이 작품은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이 되었다. 셋째는 작가의 글솜씨다. 끼에우의 미모와 재주, 효성, 뜻하지 않게 헤어진 첫사랑에 대한 낌쫑의 애타는 마음을 묘하게 풀어 나가 독자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 베트남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어느 작품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당신이 이 작품을 뽑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베트남 사람을 사로잡은 ≪쭈옌 끼에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떤 문학 작품이 ≪쭈옌 끼에우≫처럼 온 나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까? 번역하면서도 한 줄, 한 줄 그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밤잠을 잊게 만든 유일한 작품이었다.
응우옌주는 누구인가?
베트남의 대문호다. 1766년 태어나 1820년 55세로 사망했다. 한문 시집 ≪청헌시집(淸軒詩集)≫, ≪남중잡음(南中雜吟)≫, ≪북행잡록(北行雜錄)≫과 3254행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시 ≪쭈옌 끼에우≫를 남겼다.
당신은 누군가?
안경환이다.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