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육필시집 벌새가 사는 법
여름 한때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 살배기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생(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 속에서 달려 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 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기(氣)가-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 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천양희 육필시집 벌새가 사는 법≫, 10~13쪽
여름날, 시인은 길을 걷는다.
걷는 아기를 보았다.
뭉클하다.
삶이란 저렇게 기막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