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광섭 시선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다.
고요가 흔들리며
바람이 불어
風潮가 인다.
먹구름이 초생달 빛에 찢기며
한 조각 푸른 하늘이
면류관을 쓴
예수의 얼굴로 번진다.
서울 길
人波에 밀려
예수는 전신주 꼭대기에 섰고
성탄의 환락에 취한 무리들
붐비고 안고 돈다.
번화가의 전등은 장사치들의
속임과 탐욕이 내놓이지 않도록
경축의 광선을
조심스레 상품 거죽에 던진다.
모든 나무들은 벌거벗었는데
성탄수만은 솜으로
눈 오는 밤을 가장했다.
예수는 군중 속에서 발등을 밟히다 못해
그만 어둠을 남겨 두고
새벽 창조의 시간을 향해
서울을 떠났다.
가로수들만이 예수를 따라갔다.
어디선가 맨발로 뛰라는 소리가 났다.
그날 밤 서울서는
한 放火犯만이 탈주했다.
성탄야의 종소리가 잉잉 울었다.
서울은
테두리만 퍼져 나가는
속이 텡 빈 종소리였다.
산등성이에서 빈대처럼 기는
오막살이 지붕들만이 모여서
이마를 맞대고 예배를 올렸다.
이튿날 아침 서울 거리에는
예수의 헌 짚세기
한 켜레가 굴러다니는 것을
맨발로 가던 거지가 끄을고
세계의 새 아침으로 갔다.
≪초판본 김광섭 시선≫, 99~101쪽
성탄은 다가오는데
예수는 서울을 떠났다.
성탄야의 종소리 잉잉 울고,
서울은 속이 텅 빈 종소리였다.
2826호 | 2015년 12월 19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