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시선 초판본
이혜진이 엮은 ≪초판본 김규동 시선≫
밥 끓는 소리
일천육백삼십 원으로 장을 보았다. 아내를 위한 저녁상, 냄비에서 밥이 끓는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밥 냄새가 난다. 김도 난다. 얇은 뚜껑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세상
쌀 반 되
시금치 한 단
두부 한 모
고추장 반 숟갈
애호박 한 개
일금 1,630원
둘이 먹을 밥을 짓는다
밥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내가 나를 찬찬히 돌이켜 본다
공부도 해 봤고
홀어머님께 불효도 저질렀으며
죽을 고비 몇 번 넘기고
일도 했다
두 눈이 침침한 이 나이 되도록
고향 땅엔 종내 못 가고
40년의 길동무 위해
밥을 한다
젊어서는
발레리도 읽고 릴케와 에세닌도 애독했으나
정신 분석이니
쉬르레알리즘 선언 따위도 흥미로왔으나
지금은
쌀을 앉히고 불을 켜
군말 없이 밥 짓는 일에 애정을 바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고문과 분신과 한 맺힌 싸움으로
막내아이보다 어린 젊은것들이 죽고
국토의 분단은 그대로인 채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나날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곰곰 생각해 본다
헛된 상상력은 허공중을 날고
두려움은 무겁게 쌓여
핵폭탄 깔린 땅에서
밥이 끓는 소리를 들으면
이것만은 믿을 수 있는 말을 전해 주는데
남도 북도 없는 하나의 세상
그것은 아직도 아득히 머나
간소한 저녁상을 대하고 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있으면
갑자기 무엇인가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가냘프게 그러나 또렷이
내 혈관 속에
그 무슨 커다란 변혁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초판본 김규동 시선≫, 이혜진 엮음, 147∼149쪽
시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시인이란 현실 위에서 그가 겪은 체험을 가장 높고 아름다운 언어로써 그 아무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방법으로써 향수자에게 전달해 주는 임무”를 가졌다고 김규동은 말했다.
김규동이 누구인가?
대표적인 전후 모더니즘 시인이다. 1925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2011년 사망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깨달음을 얻었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와 한국 전쟁으로 인한 민족 분단,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정권, 산업화와 민주화 운동, 곧 한국 현대사 반세기의 주요 사건을 체험한 결과다.
그는 언제부터 시인의 사명을 자각하는가?
문단 생활 첫 시작부터다. ‘청록파’로 대표되는 당시 기성 시단에 대한 부정, 이전 세대와의 단절을 주장했다.
청록파를 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순수시 운동이 과거의 낡은 전통에 잔존하는 쇠잔한 애상의 울타리로 움츠러들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보았다. 현대인들에게 모종의 자극을 전달하지 못하거나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시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면 부조리가 해결되나?
그의 초기 시는 비관적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허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허무를 어떻게 극복했나?
“인류의 관념과 희망과 전쟁과 생의 확충과 내일의 예감”을 조망하려는 노력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노력은 그의 시를 어떻게 바꾸었나?
과잉된 자의식과 주제적 관념성에서 벗어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민족의 분단 현실과 민중의 질곡을 체현한다.
체현의 행동 양식은 무엇이었나?
유신 독재에 반대해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참가했다. 자유실천문인협회의 ‘165인 문인 선언’ 이후 자유실천문인협회 고문에 추대되었다. 카터 대통령 방한 반대 데모를 벌이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1980년 <지식인 134인 시국 선언>에 참가하고, 1984년 ‘민주통일국민회의’ 창립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피선되는 등 시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는 우리 사회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다고 보았나?
분단 체제와 자본주의다. 매판 자본주의가 승리한 남한 사회의 몰인정성, 시대 현실과의 불화, 전후의 척박한 사회 풍토에 대한 묘사는 그의 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 의식이다.
분단과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뭔가?
통일뿐이다. 우리 민족이 ‘하나의 세상’으로 수렴되는 통일만이 민족 분단이 야기한 이념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현실적 무기다.
국수주의자인가?
쇼비니즘과는 다르다. 그에게 통일이란 반평생을 기다린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자 찢기고 피 흘리며 싸운 남북이 화해하는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간 탕아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통일에 대한 집착과 그의 개인사는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가?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 재학 중에 단신으로 월남했다. 고교 시절 은사인 김기림도 만나고 읽을 책도 구하려 잠시 내려왔다가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은 그가 민족 통일을 염원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혜진이다. 세명대학교 교양과정부 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