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동인 작품집
이튼날, 복녀는 腦溢血로 죽엇다는 漢方醫의 診斷으로, 공동묘지로 가저갓다.
≪김동인 단편집≫, <감자>, 김미현 엮음, 140~141쪽
왕서방과 복녀 남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돈이 필요해 자신의 몸까지 팔아야 했던 복녀가 왕 서방에게 살해당한 후 그 사인마저 조작되는 장면이다. 가치와 평가를 배제한 냉정한 시선으로 가난이라는 물질적 조건이 한 여성의 세계에 미치는 위력의 강도를 객관적으로 묘사한 예다. 국문학사에서 큰 획을 긋는 인상적 장면이다.
<감자>는 자연주의 작품인가?
김동인을 자연주의 계열 작가로 간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환경결정론적인 시각에서 주인공 복녀의 도덕적 타락을 조명한다. 칠성문 밖의 빈민굴을 무대로 ‘가난’이라고 하는 물질적 조건이 ‘도덕’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어떻게 말살해 가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난을 계급의식으로 끌고 가지 않은 이유는?
1925년 당시 문단을 휩쓸었던 프로문학으로 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였지만 민족의식으로도 풀지 않았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해부한다. 자연주의적 특성이다. 유교의 정신주의적 인간관이나 형이상학적인 도덕주의에 대한 도전이 극단적으로 제시된 대표 작품이다.
서정성이 증발되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드라이’하고 ‘쿨’한 터치는 사건의 비극성을 오히려 상승시킨다.
<약한 자의 슬픔>이 말하는 약한 자는 누구인가?
1919년에 발표한 처녀작인데, 주인공은 ‘강엘니자벳트’다. 가정교사고 신식 교육을 받았으며 조실부모한 고아다. 이광수 ≪무정≫의 남자 주인공 이형식의 여성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신식 교육까지 받았는데 약한 자인가?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다. 신분이나 처지에서 이미 약자다. 그 집의 K 남작에게 겁탈당한다. 임신하게 되고 K 남작을 소송했으나 진다. 약한 자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눈뜨게 된다. 자존과 자립을 자각하게 되고 스스로 약한 자임을 앎으로써 비로소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되는 방법은?
구체적 방법으로 ‘사랑’을 역설한다.
인생이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볼 때 ‘엘니자벳트’는 문제가 많다. 겁탈을 당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K 남작의 방문을 기다리고, 낙태를 위해 병원으로 가는 전차 칸에서도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부심을 가진다. 심지어 의사가 진찰하는 순간에서조차 육체적 쾌락을 느낀다는 점은 한 남성 작가가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왜곡된 환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광수 문학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여성의 성적 본능을 본격적으로 인정한 점, 자신의 열등한 처지에 대한 자각과 개선 의지를 통해 자중감을 확보한 점, 계급 갈등에서 약자가 아니라 본능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측면에서 의지가 박약한 약자를 문제 삼은 점 등에서 이광수 소설의 계몽성을 넘어 개인주의와 반계몽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 최초로 연애에 성을 결합시키면서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사적 개인으로서 여성 존재에 관심을 기울인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아기를 낙태하는 장면을 통해 위대한 모성 신화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역할을 한 점에서, 이 소설 속의 ‘약한 자’는 ‘위반하는 여성’으로까지 발전한다고 할 수 있다.
1921년 작 <배따락이>가 동인의 소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이유는?
형식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첫 액자소설이다. 1인칭 화자 ‘나’가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겉이야기와, 영유 마을의 형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속이야기가 이중적으로 펼쳐진다.
불륜이 내용인데?
아내와 동생 사이를 불륜으로 오해해 벌어진 인생 비극을 6년 뒤 형의 시점에서 반성적으로 회고한다.
배따라기는 운명을 말하는가?
욕망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이때의 ‘운명’이 이후 ‘환경’으로 변주되면서 물질주의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 인식의 토대를 마련한다. 운명이나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그리고 그 한계와 폭력을 극복하지 못하는 허무주의적 색채의 전조가 이 작품의 성격이다. 한과 고통의 예술적 승화도 나타난다. 이 작품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배 떠날 때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는 배따라기의 처절함이 지닌 예술적 완성도다. 이런 예술에 대한 감동과 경외를 위해 액자 바깥의 ‘나’라는 서술자가 필요한 것이다.
동인 문학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모순’ 혹은 ‘이중성’이 아닐까? 계몽과 반계몽, 내용과 형식, 자연주의와 유미주의, 모성 지향과 여성 혐오, 의지와 운명, 정신과 육체 등 서로 정반대되는 욕망의 모순과 분열을 표현했다.
모순과 이중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는 유아독존적인 오만한 성격을 지녔는데도 운명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운명주의자에 불과했다. 또 이광수의 목적론적인 계몽주의 문학에 반기를 들면서 예술지상주의적인 순수문학을 주장했지만, 그 반대로 자신이 창조한 예술 세계에서는 신처럼 인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해야 한다는 ‘인형 조종술’을 주장했다.
그의 이중성은 어디까지 나갔나?
이상적으로는 절대적 모성의 영원함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여성 혐오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본격문학의 창시자이면서도 1930년부터는 대중 역사소설이나 야담까지 집필했다.
동인이 우리 문학사에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문학을 여기(餘技)나 재도(載道)의 도구로 간주한 계몽주의, 경향파 문학, 프로문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문학 혹은 예술지상주의 면모를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둘째, 액자 형식, 구어체나 과거 시제, 3인칭 시점의 확립 등을 통해 근대 단편소설 양식의 정교화에 이바지했다. 셋째, <소설작법>, <근대소설고>, <춘원연구> 등 소설론과 작가론을 본격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평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미현이다. 이화여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