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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김영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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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이 엮은 ≪초판본 김영태 시선≫

업보다 무거운 얼룩
내 인생의 질량이 놓인 자리에 희미한 얼룩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그 길에 눈 한 송이 떨어진다. 축축한 흔적이 남았다. 곧 증발되었다.

 

얼룩

크리스마스카드 구석에
쬐그맣게 적은 이름처럼

빵떡 같은 별이
떠 있는 銀河水 넘어
가고 있는
눈 가린 조랑말처럼

조랑말 목의 방울 소리

지나가듯
눈이 내린다
지나가는 향기같이
시선같이
끝장난 얼룩같이

≪초판본 김영태 시선≫, 권현형 엮음, 6쪽

“눈 가린 조랑말처럼” 시인이 추구하는 “빵떡 같은 별”은 뭔가?
“쬐그맣”고 “빵떡” 같은, 과시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다. 물거품이 될지라도 시인은 일생을 바쳐 시에 매진한다. 그늘을 껴안고 고독을 껴안고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언어를 붙들다 간다. 그 시작도 결과도 미(美)라고 할 수 있다. 김영태 시인이 언어를 깎고 깎아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와 언어의 질감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시편이다.

김영태는 누구인가?
1936년에 태어나 2007년에 작고한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 음악 평론가, 화가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 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생전에 18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그에게 예술이란?
매혹이고 삶의 약이며 정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돕는 소금이었다.

그의 시는 무엇을 그렸나?
적요(寂寥), 생의 궁극인 타나토스적 풍경이다. 그에게 미의 완성은 소멸이고 무(無)다.

적요와 무는 그의 시에서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가?
흰 눈이다. 춤, 그늘, 얼룩, 거품, 사탕 세계 등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눈의 시편들을 통해 순수 존재로 돌아가길 꿈꾼다. 시인의 미의식에 따르면 지상에서 시인의 배역도 눈송이에 불과하다. 같은 소멸 지점에 있는 것이다.

눈은 무엇인가?
흔적이고 무게다. <길>에서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남길 게 없는” 그의 지나온 길 위에 오직 남는 흔적은 “눈”이다. 눈만이 흔적처럼 내리다 멎는다. 눈과 같이 내리다 멎는 존재이므로 화자는 자신을 ‘백치(白痴)’ 같다고 표현한다. 아무것도 남길 게 없다는 점에서 눈의 길은 백치의 길이며, 백지(白紙)의 길이다.

눈의 길은 무의 길인가?
절대적인 미감과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한 환골의 길이며 탈태의 길이다. 미의식을 실현하기 위한 구도자의 길, 자기 성찰의 길이다. 아무나 갈 수 없는 소수자의 길이다.

비일상의 자기 코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시인은 요식 행위와 포장된 평화가 일상적 코드라고 간주한다. 불타는 욕망 덩어리인 인간의 잡사는 무기력하다는 점에서, 포장된 평화 속에 부유한다는 점에서 눈송이와 다를 바 없는 허무한 존재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처(定處)를 코드로부터 자유로운 곳에 두고자 한다.

‘정처’란 뭘 말하는가?
소신 혹은 마음의 거처를 의미한다. 김영태의 정처는 “무릎 꿇지 않겠다”는 소신이다. 수세미보다는 호박이 되겠다는 남과 다른 코드다. 남과 다른 코드인 호박은 꽃이 진 자리에서 핀다. 잘려 나가더라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호박의 정처는 일류의 자리다. 칼이 아니라 기침 소리에도 놀라는 좀생이는 그의 정처가 아니다. 꽃 진 자리, 꽃의 정처가 사라진 자리에 김영태 시의 정처가 있다.

현실 인식이 결여되고 지나친 탐미주의에 함몰되었다는 비판은 정당한가?
<종이꽃> <초개수첩>을 비롯한 여러 편의 시에서 현실에 대해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고 풍자의 미학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코드와 일치하는 면도 있다. 시인으로서의 방향을 늘 고민했으며 때로 권력의 민폐에 대해 조준했다.

시인이 생각하는 생의 질량은?
얼룩이다. 이는 찰나이고 직관의 영역이다. 끝장난 얼룩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김영태는 존재의 무게감을 궁극적으로는 무로 보았다.

존재를 무로 본다는 것은 결국 비관주의를 뜻하나?
끝장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세계 인식이지 비극주의나 패배주의는 아니다. 김영태는 눈물과 아픔과 타나토스적 불안을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정서로 치환한다.

“모자라는 듯한 덤덤함”인가?
“너는 아프다고 말했다/ 나만큼? 네게 말했었지” 우리는 누구나 아픈 자가 된다. “가슴과 가슴 그 안에 손을 넣고 있어도 모자라는 듯한” 결핍과 부재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방향은 결국은 제로를 향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무상과 유한이 김영태의 속에서 유지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예술을 통해서다. <태평무>를 보면 “버선발로 저를 드는 여자”는 “옛 세월, 옛 시간”까지도 가뜬히 든다. “춤 속의 그 여자가 아주 거뜬히 저를 든다”는 점을 주목한다. 춤의 경지 혹은 미학의 경지는 제 존재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버선발의 힘이다. 춤꾼이 자기 앞의 생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경지를 그는 예술의 힘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김영태의 미학에서 ‘시선’은 무엇인가?
그의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선’이다. 시선은 미의 세계와 교감하는 방식이자 미적 체험의 참된 도구다. 시인의 개성은 탐미적인 태도로 미에 대한 무한한 갈애를 표상하고 있으나 미를 해치거나 꺾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일정한 미적 거리를 스스로 견지하고 있다. 너무 아끼므로 눈이 아프도록 보지만 손을 대지는 않고 시선으로만 감촉하는 경지, 바로 염화미소의 경지다.

≪초판본 김영태 시선≫에서 독자는 무엇을 볼 수 있나?
무슨 업!처럼 예술에 모든 것을 소진하고 간 사람 김영태. 잘 깎인 언어들을 통해 고감도의 예술혼을 느껴 보시라. 평생 ‘그늘’ 속에 있으면서 그가 남긴 미의 결과를 아름다운 시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권현형이다. 시인이고 <김영태 시에 나타난 미의식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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