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용성 작품집
장현숙이 해설한 ≪초판본 김용성 작품집≫
똥파리 자살하다
군대는 메커니즘이 지배하고 그곳에서 출세하려면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김수진 대령. 전도를 막는 불순분자를 향한 총구는 자신의 심장을 쏜다. 메커니즘의 지배자는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통찰일까?
“멍텅구리야, 산간 지대에서는 사단과 대대, 대대와 중대 사이의 교신이 잘 안 되니까 중계 역할을 하란 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통신 중계소야.”
대대장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납빛처럼 창백하게 굳어 갔다. 사실 이와 같은 역할이란 통신 선임 하사관의 직책이면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었고, 기술적인 분야보다도 지휘 능력을 길러 온 대대장에게는 당치가 않은 처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병력은 장교로는 작전 보좌관을 대동하고 그 외에 통신 하사 1명, 통신병 1명, 보초병으로 보병 3명만 데리고 가도록 해.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해서 유례없이 지휘권을 연대장 리빠똥 장군에게 바친 대대장 송 중령은 험준한 육백산으로 올라갔다.
≪김용성 작품집≫, <리빠똥 將軍>, 김용성 지음, 장현숙 엮음, 42쪽
연대장은 어떤 인물인가?
연대장 김수진 대령은 진급에 혈안이다. 격에 안 맞지만 연대장이 직접 대대급 훈련 지휘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비인간적인 통솔 방법과 무자비한 행동은 군단 내에서도 꽤나 이름이 나” 있다. 수시로 ‘쪼인트도 깐다’.
연대장은 어쩌다 ‘리빠똥 장군’이 됐나?
‘똥파리’란 단어를 거꾸로 이용해 명명된 별명이다. 꼭 프랑스 사람 이름 같다. 대령은 진짜 ‘리빠똥’이란 위인이 있는지 조사해 보기도 했다.
리빠똥을 둘러싼 인물은 어떻게 설정되나?
‘부관’ 정 중위는 월남전선에서 부하 세 명을 잃고 귀국, 연대로 전입 온 사람이다. 월남전 충격 때문에 절망감에 시달린다. 리빠똥에게 괴롭힘 당하는 대대장 송 중령은 처음에는 ‘피해자’로 나오지만 나중에는 제2의 리빠똥이 될 조짐을 보인다.
<리빠똥 將軍>의 스토리 라인은?
악명 높은 리빠똥 장군이 연대장으로 부임해 오니 장병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어느 날 리빠똥의 부대 정훈관으로 월남에서 돌아온 정 중위가 왔다. 정 중위는 정훈관을 겸해 직제에도 없는 연대장 부관직을 맡았으나, ‘준장 계급장 임의 부착’ 소동으로 리빠똥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정신과 진단 결과 노이로제가 심한 정도라 하는 정 중위. 리빠똥은 정 중위를 자신의 진급을 위해 이용하려 든다. 20년 군대 생활에서 아직도 장성이 못 된 치욕을 씻고자 혈안이다. 이번 진급 심사에서도 떨어지자 그는 “꿈이 좌절되는 것은 연대 내에 본인을 모함하는 불순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급 점수를 따고자 대대급 훈련에 나가 직접 지휘를 맡는다.
연대장이 어떻게 대대 훈련을 지휘하게 되는가?
사단장에게 “신출내기 대대장 못 믿겠다. 내가 가야 마음이 놓인다”며 읍소한다. 그러나 리빠똥의 지나친 의욕과 괴팍한 성격 탓에 훈련은 꼬인다.
리빠똥의 권총 자살의 자초지종은 무엇인가?
훈련이 잘 안 풀리자 통신 중계소에 나간 대대장에게 분풀이로 포격 명령을 내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 일로 군사재판에 회부될 위기에 처하나 모든 걸 덮으려는 상부의 조치로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유서를 남긴 후 권총으로 자살한다.
‘준장 계급장 임의 부착’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정 중위가 월남에 있을 때, 작전 때마다 별을 달고 나간 동기가 있었다. ‘별’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동경하며 죽어 가던 전우를 대신해 그는 ‘별’을 가슴에 달았다. 그는 왜 리빠똥 장군이 ‘별’을 달고 싶어 하는지, 왜 전우가 ‘별’을 달고 전쟁에 나갔는지 모른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별’을 이해하지 못한다.
송 중령은 어떻게 해서 제2의 리빠똥 후보가 되는가?
그는 이성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정 중위의 상처를 이해 못한다. 계급장 임의 부착 사건을 그저 리빠똥에 대한 반항으로만 여긴다. 송 중령은 ‘별’을 권위적 계급장으로만 인식한다.
송 중령의 세계관과 처세법은 무엇인가?
거대조직의 메커니즘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세계관이다. 유일한 생존법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 냉혹함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간성이 마멸된 냉혈인간이 된다. 제2의 리빠똥 장군으로 변신할 조짐을 보인다.
대령의 권총 자살은 어떻게 수습되나?
군 당국은 ‘아군 포격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리빠똥을 입원시킨 뒤 곧 전역 조치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살했으니 내심 시원했나 보다. 작가는 대령의 죽음과 권총 입수 경위에 무관심한 군인들의 태도 및 폭력적 현실을 비판한다. 군 당국은 자살 사실도 은폐한 채 서둘러 장례를 치른다.
<리빠똥 將軍>의 메시지는?
조직의 메커니즘이 야기하는 인간성의 마멸과 타락 과정을 보여 준다. 진급을 위해 뛰다가 희극적으로 죽어 간 리빠똥 장군뿐 아니라 피해의식과 절망감 속에서 방황하다 자살 방조자가 되어 버린 정 중위, 리빠똥 장군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냉혈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송 중령 등을 통해 군대의 비합리성과 폭력적 구조를 드러낸다.
김용성이 해병대 간부후보생에 자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1964년에 군대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고자 지원했다. 5년 뒤, 월남전 때문에 연장됐던 군대 생활을 임시대위 계급장을 끝으로 마쳤다.
그가 군대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군대에서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지성적 인간일지라도 본능적인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군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배웠다고 했다.
김용성은 작가로서 어떤 길을 걸었나?
1961년 ≪한국일보≫의 장편소설 공모에 ≪잃은 者와 찾은 者≫가 뽑혀 데뷔했다. 군 복무 중에도 다수의 단편을 썼다. 전역 후 ≪한국일보≫ 기자가 됐다. 1971년 기자를 그만둔 후 창작에 열중했다. 장편·중편·단편 등을 고루 썼으며 특히 <리빠똥 將軍>처럼 중편에서 명작이 많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이 실렸나?
중편 <리빠똥 장군>, <안개꽃>,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과 단편 <홰나무 소리>, <탐욕이 열리는 나무>, <침묵과 소리>, <아카시아꽃> 등이 실렸다.
중편 분량에 장편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짧은 분량에 곡절 많은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었다. 격동기에 상처받은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 작가는 전쟁의 폭력성과 횡포, 역사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비애, 사회조직과 개인의 상관관계, 현대 사회의 반인간화 현상에 천착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현숙이다. 가천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