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선 초판본
신간 시집, <<초판본 김춘수 시선>>
너는 자유인가?
어려운 시인이다.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들리는 것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듣고 뜻을 찾는 일상에서 뜻을 갖지 않는 말을 듣는 우리는 당황한다. 그러나 말의 뜻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약속이고 전통이며 규율이고 조건이다. 너가 자유를 찾을 때 가장 먼저 너의 목에 굴레를 채우는 바로 그런 어제의 것들이다.
김춘수는 누구인가?
미지(未知) 혹은 무명(無明)의 영역을 노래한 시인이다. 미개척지였다.
그의 좌표는?
시에서 언어가 어떤 인식론적 혹은 존재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그만큼 깊이 제기한 시인이 누가 있었나. 언어에 대한 그의 탐구는 언어가 드러내는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시적 성찰이다.
시의 언어가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새로운 것인가?
그것이 무의미의 차원을 드러낸다는 생각은 지극히 낯선 것이다.
초기 시작법은?
첫 시집 ≪구름과 장미≫에 실려 있는 시들에서 그가 추구한 시작법은 관념과 유추다.
어떻게 나타나나?
<구름과 장미>에서 “장미”는 1950년대 당시 실제 체험의 영역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선험의 영역을 표상한다. 이것은 “장미”가 관념의 세계를 유추하는 질료라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례는?
<꽃을 위한 서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인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는 체험의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신부는 장미처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시적 대상인 것이다. 장미와 신부의 이러한 관념성은 그에게 이 질료들이 말의 피안에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현실이 아닌?
그래서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관념의 공포감은 어디로 향하는가?
다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서술적 이미지다.
서술적 이미지란?
관념의 수단이 되는 이미지를 초월한 것을 말한다. 김춘수 식으로 말하면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다. 관념을 배제하기 위한 그의 방법적인 시도는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지만 이것을 통해 자유연상이라는 개념과 만난다.
그의 지향성은 어디를 보는가?
대상에 대한 형상이 아닌 행위 주체 곧 시 쓰기 주체의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세계를 지향한다.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순서에 따른 계기성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탈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탈시간성의 세계에서는 순간순간이 영원의 세계를 재현한다. 순간의 영원화는 기본적으로 덧없음 곧 허무를 동반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허무는 ‘영원이라는 것의 빛깔’이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순간이 영원이 되는 세계는 의미를 통해서는 해명할 수 없다.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를 부수고 해체할 때 그 세계는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의미가 해체되면 남는 것은 허무의 빛깔로 가득한 무의미의 세계다.
무의미의 세계에서 언어의 스탠스는?
시에서 의미가 사라지고 허무한 또는 무의미한 행위만 반복된다면 그것은 언어의 율동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 행이나 두 행이 어울려 이미지로 응고되려는 순간, 소리 또는 리듬으로 그것을 차단하는 수도 있다. 소리가 또 이미지로 응고하려는 순간, 하나의 장면으로 그것을 차단하기도 한다. 연작에서는 한 편의 시가 다른 한 편의 시에 대해 그런 관계에 있다.”
시에서 어떻게 보이는가?
<처용단장> 2부에서 보여 주는 세계는 단순한 언어유희와는 다르다. 이 시 속의 말들은 그 자체로 실존적인 긴장을 유발한다. 마치 팽이가 돌아가듯 이 시 속의 말들은 그 자체가 실존에 따른 현기증이다. 미친 듯이 돌다가 스스로 죽어 버리는 팽이가 환기하는 상황은 그래서 불안하다. 이 시 속의 말이 이렇게 팽이처럼 실존적인 상황에 놓일 때 관념, 의미, 현실, 역사, 감상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말의 긴장된 장난 말고 우리에게 또 남아 있는 행위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시의 궁극적인 지향이 “말의 긴장된 장난”에 있다는 것은 미학주의자 면모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무의미 시’라는 낯선 개념을 제시한 걸까?
여기에는 그의 서구 상징주의에 대한 취향의 일단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의 방법론적 긴장, 곧 시적 기교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그의 시는 언어 혹은 존재에 대한 회의와 해체의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로 무의미 시를 향한 방법론적인 긴 도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존재란?
관념이나 개념화된 의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탈은폐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떤 도구적 연관성도 없이 그 스스로 은폐된 세계를 탈은폐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겨냥하는 말 혹은 언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방법 없는 방법, 기교 없는 기교로 하나의 낯선 세계를 구축하려는 미학주의자의 의식을 반영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우리 시에 무엇을 기여했나?
언어와 실존 혹은 언어와 존재의 문제를 방법적인 회의와 실천을 통해 깊게 탐구했다. 이것은 곧 우리 시의 모더니즘을 일정한 미학적인 수준까지 올려놓은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이전의 사물의 본질에 천착하는 것이다.
이상과 비교하면?
김춘수는 우리 시사에서 이상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시인이다. 이상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실천하고 또 정립해 왔다. 이상이 자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면 김춘수는 언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김수영과 비교하면?
김수영의 현실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흐름과는 상반된 탈현실주의적이고 탈역사주의적인 시를 구현했다.
말의 절대 자유를 꿈꾸었나?
그는 “말에 절대 자유를 주고 보니, 이번에는 말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말의 절대 자유를 꿈꾸는 그의 깊은 자의식이 투영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에 대한 깊은 자의식은 그것이 “자유에 길들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불안하니까 자신을 그 불안 속에 함께 있자고 했다”는 대목에 와서 절정에 달한다.
말의 절대 자유가 목적이 될 수 있나?
시인은 말의 절대 자유를 희구한다. 말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에 대한 절대 자유를 희구하기 때문이다.
삶은 어땠나?
1950년대에 활발한 창작과 문단 활동으로 1952년 시 비평지 ≪시와 시론≫를 창간했다. 1960∼1970년대에는 시 창작뿐만 아니라 시론에서도 남다른 성과를 보여 주었다. 여러 권의 시론집을 비롯해 시적 사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의미와 무의미≫와 ≪시의 표정≫을 내기에 이른다. 또 1980년대는 다양한 사회 활동을 했다. 국회 문공위원으로 4년간 활동하며 예술원 회원이 되고 한국시인협회 회장과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0년대에는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4년 83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시에 대한 열정과 진지성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왜 김춘수 시를 좋아하나?
모던하고 아방가르드적인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김춘수의 시에 매혹되었다.
김춘수 시는 한마디로 뭔가?
의미 이전의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시다.
어떤 기준으로 시를 골랐나?
인습적이고 관습화된 상상과 표현을 탈피해 인간의 감성에 얼마만큼의 충격을 주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김춘수는?
짜깁기와 표절을 넘어 인간의 상상과 표현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이재복이다.
김춘수의 시를 한 편 고른다면?
<꽃을 위한 서시>를 추천한다.
꽃을 위한 序詩
나는 시방 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無名의 어둠에
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新婦여,
<<초판본 김춘수 시선>>, 김춘수 지음, 이재복 엮음,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