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백석 시전집
이동순이 엮은 ≪초판본 백석 시전집≫
우리가 백석을 좋아하는 이유
눈 내리는 밤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신의주 박유봉네 작은 방은 낯익다. 땅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고 그는 로컬리티를 길어 올린다. 백석은 영문학도였고 그래서 한국을 알게 되었다.
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뒤ㅅ다리를 구어 먹었다
게 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해볓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초판본 백석 시전집≫, 이동순 엮음, 54쪽
왜 우리는 백석을 좋아하는가?
민족의 전통 때문이다.
그의 시에 담긴 전통이란 뭔가?
우리가 대대로 함께하고 물려 온 ‘삶’의 모습이다.
삶의 어떤 모습이 전통인가?
형태, 방법, 환경, 주체 모두다. 사상, 종교는 물론이고 고유의 자연, 음식, 친족 공동체, 민담, 방언이 다 전통이다.
음식이 왜 전통인가?
무엇을 먹는가는 어떻게 사는가를 결정한다. ‘김치’를 먹는 민족과 ‘기무치’를 먹는 민족은 정체성이 다르다. 백석은 토속 음식을 낱낱이 열거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극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음식으로 어떻게 자극한다는 말인가?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 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팟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편인가?
<고야(古夜)>의 한 구절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장면이다.
“쩨듯하니”가 무슨 말인가?
‘빛이 선명하다, 환하다’는 뜻이다. 평북 방언이다. 백석은 전통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방언을 택했다.
방언도 전통인가?
모국어는 가장 중요한 전통이다. 그중에서도 방언은 토착 정서를 품는다.
방언의 로컬리티는 배타성을 의미하지 않는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를 보라.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가 넘쳤다. 그러나 공감대는 넓었다.
알아듣기 힘든데 어떻게 공감이 일어나는 것인가?
방언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해도 바탕은 한국어다. 동일한 언어 환경에서 낯선 방언은 거부감이 아니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공유된 정서를 바탕으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백석이 그의 문학에서 전통을 추구한 목적은 무엇인가?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기 위해서다.
전통이 대항 수단으로 실효가 있는가?
제국주의는 ‘문명화’의 탈을 쓰고 왔다. 한민족의 전통을 ‘미개’로 왜곡하고 서구화를 강요했다. 우리 문화의 문명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가짜 문명화에 대항할 수 있다.
쇼비니즘 아닌가?
백석은 도쿄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영어 선생이었고 신문 기자였다. 서구 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계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백석의 전통 전략은 성공한 것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작품을 보라. 모든 걸 말한다.
당신은 백석을 어떻게 만났나?
분단으로 잃어버린 문학사를 복원하기 위해 매몰된 북방 문인들을 연구했다. 그 끝에 그가 있었다. 1987년에 처음으로 ≪백석 시 전집≫을 출간했다.
이번에 ≪초판본 백석 시전집≫을 다시 엮은 이유는 뭔가?
그동안 새로 발굴된 시가 많다. 모든 작품을 세심하게 검토했다.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은 물론, 최근 발굴된 것도 추가했다. 위작으로 보이는 것은 삭제했다. 백석 특유의 난해한 방언에는 자세히 주석을 달았다. 30년에 달하는 연구를 집대성한 완전본이다.
당신은 누군가?
이동순이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