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백석 시전집
東海
東海여— 오늘 밤은 이러케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 오는데 東海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또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듬이 누웟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끼가 처서 물가에 미역이 만히 떠들어온 것이겠지.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東海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헤를 빼어 물고 물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궂은비 부실거리는 저녁엔 물 우에 떠서 애원성이나 불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츰엔 인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나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 밑 보드러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쓰시려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굼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東海여!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 하는 심사를 알을 친구란 꼭 하나 잇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적은 섬—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늬 외진 바위 판에 떼로 몰켜 올라서는 눕고 앉엇고 모도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짓거리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어도 숨은 물 밖에 대이고 쉬이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깔어앉어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잇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딸흐며 노는 활량인데 나는 이 친구가 조하서 칠월이 오기 바뿌게 그대한데로 가여야 하겟읍네.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 나는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헤가우손이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 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시케에 들어 절미지. 하기야 또 버들개 통구이가 좀 조흔가. 횃대 생성 된장 지짐이는 어떠코.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굉메리는 아레 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웃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 아니지만 산틋한 청삿자리 우에서 전북회를 노코 함소주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북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의례히 오는 노랑 바탕에 꺼먼 등을 단 濟州 배 말입네.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만허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 언제 어늬 모롱고지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잇엇다는 둥… 참 말이 만치.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7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제주 색시하고 살렵네. 내가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해도 미역 내음새에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잇읍네.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날날이 키가 자라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안해를 일코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잇는 것과 그리고 그 英語를 잘하는 총명한 四年生 琴이가 그대네 洪原郡 洪原面 東桑里에서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
≪초판본 백석 시전집≫, 140~143쪽
오늘 밤도 이렇게 무더운데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를 맡던 백석은
그때 동해로 가 제주 색시를 만났을까.
2700호 | 2015년 7월 25일 발행
동해여, 오늘 밤은 이러케 무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