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식 시선 초판본
설정식의 <<초판본 설정식 시선>>
미국을 바라보다 사라지다
설정식은 미국 유학생이다. 해방되자 미국을 기대했지만 그것은 제국의 가면이었다. 인민군에 자원입대하고 휴전회담에 통역관으로 나타났으나 미제 스파이로 처형되었다. 태양은 사라지고 해바라기는 떨어졌다.
帝國의 帝國을 圖謀하는 者
믿음을 爲하야 호올로 屹立한
‘브리감’의 都市를
中天에 소리개
도리혀 같이 뜨게 하는
‘大溪谷’의 莊嚴은 또 그만두고
‘와이오밍’에서 ‘코로라도’
기름진 平野로 들어서는
옥수수 밭고랑 고랑은 진정
내 故鄕과도 같이
어데 어데를 가도
‘自由’ 그 말에 彷彿한 土地를
‘파씨쓰타’의 무리여
너의들 까닭에 나는
‘휘트맨’의 곁에 가차이 설 수 없고
또 이날에도
讚歌로써 하지 못하고
두 폭 넓은 비단 靑褓에 ‘怨望’을 싸는도다
≪초판본 설정식 시선≫, 차선일 엮음, 102~103쪽.
설정식이 누구인가?
시, 소설, 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문인이다. 늘 구체적인 상황에 개입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었고 격동기를 살며 숱한 갈등과 대립, 정치적 부침을 겪었던 풍운아였다. 시인으로서는 그의 삶에 각인된 시대성을 때로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의 언어로, 때로는 민족의 구원을 염원하는 웅숭깊은 희망의 언어로 노래했다.
문단에 나간 것은 언제인가?
1932년 문단에 데뷔하고 몇 편의 시와 단편소설을 연달아 내놓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습작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후에는 기독교 사상과 미국 문학 등에 관한 공부에 전념했다. 1940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에도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별다른 작품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일제 말기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에서 특별한 역할과 사명을 찾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고 침묵을 지켰다.
창작열이 해방이 되면서 폭발한 것인가?
1947~1948년에 ≪鐘≫, ≪葡萄≫, ≪諸神의 憤怒≫ 등 세 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시 창작 외에도 소설 창작, 희곡 번역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이 시기에 활발히 펼쳤다.
그를 ‘해방기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인가?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삶의 이력이 우리 역사의 초상과 겹친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식민지와 해방, 좌우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 분단 체제 고착에 이르는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과정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비극이 그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나?
해방 직후 미 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에 취임하는 한편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1947년에는 군정청에서 입법의원 부비서장으로 전출되고 1948년에는 ≪서울타임스≫의 주필 겸 편집국장직을 맡았다. 1949년 ≪諸神의 憤怒≫가 판금 처분되고 체포령이 내려지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인민군에 자원입대해 월북했다. 이후 1951년 7월 휴전회담 때 인민군 대표단의 통역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1953년에는 남로당계 숙청 바람에 휘말려 미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임화, 이승엽, 조일명 등과 함께 처형당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느 편이었나?
정치 행보를 보면 그가 개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변신을 거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정치 이념의 당위성을 맹신하는 관념적 지식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정치 노선과 사상이 현실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 과감히 자신의 선택지를 포기한 것이다. 잦은 변신은 결코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 변혁의 이념적 수단을 찾기 위한 고민과 실천의 산물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방황했나?
국권 회복과 민족 구원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는 해방 후 이념적 반목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었던 혼란스런 정국에서 민족국가 건립의 길을 찾고 제시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나 컸던 탓에 실책과 과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설정식이 겪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특별한 모순인가?
미국 유학파 지식인이었던 그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의 원조를 받고 그 체제를 도입하면 민족국가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 군정의 관리로 일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직시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신탁통치가 결코 민족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 지금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논의가 드물었을까?
설정식은 그동안 문학사적 평가에서 다소 소외된 문인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문학사적인 자리매김도 미진하다. 그의 시는 난해한 한자어가 적잖이 사용되고, 동서고금의 신화, 고전, 우화에 대한 지적 교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읽기 어려울 만큼 현학적인 면이 다분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그러나 그의 시에 나타나는 예언자적 지성은 우리 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시의 특징으로 무엇을 들 수 있는가?
해방 후 한반도의 현실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특정한 은유나 상징을 사용하기보다 현실 문제를 환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을 지시하며 서사적 구체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점은 설정식 시에 나타나는 시적 리얼리티의 특징이다.
‘태양’과 ‘해바라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이미지들이다. 이미지의 속성이 변할 때조차도 둘은 상관성을 띤다. ‘태양’이 회복된 국권과 민족을 상징한다면, ‘해바라기’는 그러한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염원하고 희구하는 민중을 뜻한다. 초기 시편들에서 태양은 미국을 암시했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직시하게 된 뒤에는 부정적인 대상으로 변질한다. 이후 그는 태양을 바라보던 해바라기보다 태양을 호명하고 스스로 태양이 되는 해바라기의 상징성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민중의 힘에 의한 자주적인 국권 회복이라는 변화된 현실 인식과 연동된 이미지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태양은 해바라기에 의해 다시금 긍정적인 대상으로 변모하며, 태양과 해바라기의 동일성이 회복된다.
민족에 대한 고민 끝에 그가 얻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어떠한 정치적 이념보다 민족을 우위에 두고, 이를 위해 이념이나 정책 그 자체의 당위성보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타진하는 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삶이 그렇듯이, 분단 체제란 민족의 운명이 이념에 희생된 결과물이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분단 체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설정식의 삶과 문학은 어떠한 경우라도 이념이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신은 누구인가?
차선일이다. 모더니즘 소설과 대중 소설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