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송영 단편집
<4·19특집> 혁명 이야기 2. 무산계급 해방문화의 연구
김학균이 엮은 ≪초판본 송영 단편집≫
순직한 반역성의 문학
땀에 전 노동자들과 같이 웃고 같이 잠드는 새 친구. 교묘한 이지와 함께 순직한 반역성이 빛나는 눈. 송영의 혁명 의지는 이런 문학이었다.
뭘 하는 것인가?
일제강점기 동경이다. 승오가 ‘자유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날 밤이다. 다른 노동자가 승오를 덮치려 한다.
‘자유노동자’가 뭔가?
날품팔이다. 명칭은 긍정적이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직장에 매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일꾼이다.
승오는 어쩌다 자유노동자가 되었는가?
동경으로 건너와 3개월 가까이 일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식민지 피지배인에 학교 졸업장도 없고 몸이 허약해 매번 거절당한다. 일가 형의 추천으로 한국인 ‘시다오야가다’(소두목)를 찾아가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다.
저 장면은 저러다 어디로 가는가?
승오가 똥이 마려워 죽겠다고 하여 허둥지둥 빠져나온다.
승오는 작가 송영인가?
자신의 노동판 체험을 투영했다. 그는 절친한 친구들을 따라 1922년 동경으로 건너갔다. 낮에는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예술 강의를 듣는 생활을 반년간 지속했다.
<느러가는 무리>는 어떻게 매듭지어지는가?
제목 그대로다. 화이트칼라 지식인이던 승오가 노동자 의식을 획득한다.
승오의 노동자 의식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진흙 투성이 한 의 로동자 사이에는 가티 웃고 가티 드는 새 친구 하나가 느럿다. 그는 교묘한 리지 이외에 순직한 반역성이 빗나고 잇는 눈을 가진 자다. 그 눈은 분명하게 승오의 눈이다.”
작가의 사상적 지향은 무엇인가?
1922년 송영은 계급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단체로 ‘염군사(焰群社)’를 조직하고 사상운동에 매진한다.
‘염군사’가 뭔가?
송영이 이적효, 이호, 최승일, 김영팔과 조직한 프롤레타리아 문예 단체다. 기관지 ≪염군≫을 기획했다. “본사는 무산계급해방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이라는 강령을 공개적으로 내건, 카프보다 앞선 최초의 프로문화 단체다.
송영의 계급문학 작품은 또 무엇이 있나?
<석공 조합대표>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대립에, <군중정류>는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립의 도식으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가?
시대적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1차 방향 전환 이후 KAPF는 문학 운동을 사회적 실천에 직결시켰다. 이념에 맞춰 작품을 쓰려다 보니 계급 간 대립이 등장하고, 노동자와 소작인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지식인이 등장하는 도식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도식이 문학과 공존할 수 있는가?
송영은 이런 도식 가운데서도 서사를 무리하게 진행시키지 않았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갈등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 한 집단의 항거나 저항이 아닌 개인적인 각성과 저항을 보여 줌으로써 소설적 진실성을 획득했다.
1935년 KAPF 해체 이후에는 도식성에서 벗어나는가?
계급주의 사상이란 압력에서 벗어나면서 문학적인 완성도와 미적인 구조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저항까지 벗어 버린 것은 아닌가?
KAPF가 해산되고 소속 문인들은 전향을 선언했다. 하지만 송영의 작품에는 저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36년에 발표한 <아버지>와 <‘솜틀거리’에서 나온 소식(消息)>은 계급문학 운동이 휩쓸고 지난 뒤의 후일담이면서도 감상적이거나 패배 의식에 빠져 있지 않다.
송영의 혁명은 무엇이 되었는가?
KAPF는 해산되었으나 혁명의 끈은 놓지 않았다. 해방 후 이기영, 한효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예맹)’을 조직했다. 1946년 임화의 주도로 예맹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자 1946년 월북한다.
북한에서는 어떻게 살았나?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참전하기도 했다. 1959년 9월 8일 북한에서 가장 영예로운 인민상 계관인(桂冠人)이란 칭호를 받는다. 1978년 정신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학균이다. 서울시립대 교양교직부 연구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