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시선 초판본
休戰線에서
神이여.
어떻게 당신에게 매달려 간구하여야 되는 것입니까?
天地를 뛰짚고 怒濤 치며 무수한 生靈들이
피와 주검의 처절한 相으로 여기에 불살린 다음
겨우 다시 無言한 本然의 姿勢를 도리킨
山이며 구름이며 樹木이며 時間들이 짓는 적막한 空白 뒤에 숨기어
더욱 증오와 살륙을 노리어 총검을 갈고 있는 이 악착스런 人間의 事件인즉
惡鬼가 도야지 속에 들 듯 사람의 뱃속에 들앉은 악마의 소치란 말입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참견하여야만 되는 일이며
당신의 마지막 심판 없고는 끝장 지울 수 없는 노릇입니까?
그리고 아직은 당신이 거동하여 나설 때가 일르단 말입니까?
더욱더 人間으로 하여금 이 그릇된 행위를 저즐르게 내버려 두므로서
진심으로 뉘우칠 판국까지 이르도록 두고 보는 것입니까?
神이여.
기어 당신에게 매달려 간구하여야만 되는 일입니까?
시방 한낮의 바람결에 무심히 하늘대는 풀잎에 옮아 붙어 희학하는 神이여.
밤이면 저 大熊星座 부근 크다랗게 臥席하여 계시는 神이여.
<休戰線에서> 전문, ≪초판본 유치환 시선≫, 배호남 엮음, 99~100쪽
63년째다.
포성은 사라져도 증오가 남았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언제나 끝날까?
생명을 노래하던 시인이 신을 애타게 찾는다.
종군 문인으로 전장을 넘나들던 그이기에
간구가 더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