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이용악 시선
葡萄園
季節鳥처럼 포로로오 날아온
옛 생각을 보듬고
오솔길을 지나
포도園으로 살금살금 걸어와…
燭臺 든 손에
올감기는
싼한 感觸!
대이기만 햇스면 톡 터질 듯
익은 포도 알에
물든 幻想이 너울너울 물결친다
공허로운 이 마음을 엇저나
한 줄 燭光을 마저
어둠에 밧치고 야암전히 서서
시집가는 섬 색시처럼
모오든 약속을 잠 이저버리자
조롱조롱 밤을 직히는
별들의 言語는
오늘 밤
한 각의 秘密도 품지 안엇다
<葡萄園> 전문, ≪초판본 이용악 시선≫, 곽효환 엮음, 10~11쪽
해방이 되자 고향인 함북 경성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남로당에 가입했고 북쪽을 선택한다. 시는 줄곧 어둡고 침통했다. 이 시만은 예외다. 포도송이 익어가는 여름밤, 별들의 수다가 함경도 사내를 섬 색시로 만든다. 모든 약속을, 현실을, 잠깐 잊어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