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이은상 시선
한국 시 신간, ≪초판본 이은상 시선≫
가곺아라 가곺아
남쪽 바다는 파랗다. 객지에서 기억하는 그 바다는 더 파랗다. 사무치는 그리움은 바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란으로 뭉개지고 휴전으로 잘려 나간 국토의 어디 한 곳 피 흘리지 않은 곳은 없었다. 상처 위에 상처가 거듭되는 곳, 조국의 산하를 보듬어 내는 시가 있었다.
이은상은 누구인가?
현대시조의 개척자다. 그리고 문사다.
언제 사람인가?
1903년에 났다. 구학문과 신학문을 섭렵했다.
고향은?
마산이다. 1982년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다.
성장 환경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익힌 글쓰기와 민족의식이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민족의식이 어떻게 나타났나?
일제 탄압이 심해지자 1938년에 절필했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시는 언제 시작했나?
청년 때부터 문장력이 뛰어나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스무 살 때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와 <꿈 깬 뒤>를 썼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조 창작에 매진했다.
주제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조국 강산을 헤집으면서 느끼는 감회, 그리고 분단이라는 민족 현실에서 분출되는 심정이다.
조국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나?
<너라고 불러 보는 조국아>에는 피멍이 들고 해질 대로 해져 버린 조국 강산을 바라보는 시인의 서러운 마음이 잘 나타난다. 1951년, 전쟁이 한창 국토를 유린하고 짓뭉개 버릴 즈음에 쓴 시다.
조국 강산을 노래한 시가 많은가?
국토를 순례하면서 기행시를 여러 편 남겼다. 이를 엮어 1954년에 ≪조국강산≫을 출간했다.
그에게 조국이란?
하나의 신앙이자 삶의 형식이다. ‘민족’이나 ‘조국’이라는 관념이 발현되는 땅과 산천을 그만큼 오랫동안 눈으로 살피면서 매만진 사람도 드물다.
시 밖에서 조국애는 어떻게 나타났나?
말년에 노구를 이끌고 휴전선을 걸었다.
시조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생래적이었던 것 같다. 민중의 감정과 애환을 시가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창작에 매진했다고 볼 수 있다.
특징은?
시조 혁신을 주장하며 양장시조를 실험했다. 시조 한 수에서 한 장을 뺀 두 장만으로 시인의 감정과 심사를 드러낼 수 있다는 논리다.
왜 그런 파격을?
<노산론>을 쓴 임선묵의 말을 빌리면 “더 쓴다면 결국 군더더기가 되어 시의 생명과 가치를 도로 망치게 되는 것을 항상 느낌에서 표출”한 결과라고 한다.
양장시조 형식으로 시조의 맛을 살릴 수 있나?
형식만으로는 힘들고 시인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산은 시조 형식에 특히 개방적이었다. 시의 틀에 작품을 끼워 넣지 말라고 했다.
시의 경향은?
고향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열정적으로 드러냈다.
시에 담고자 한 메시지는?
고향 사랑과 조국 사랑, 그리고 민족의식 배양이다.
그의 시에 나타난 현실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하면서 느낀 향수가 초기 시조 창작의 근저였다. 중기와 후기에 이르러 조국 강산을 순례하면서 느낀 민족 현실에 대한 비애와 울분을 드러냈다.
가곡 중에 그의 작품이 유독 많다. 사랑받는 까닭은?
한국인의 정서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애환이나 한을 잘 끄집어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의 영향력은?
현대시조의 개척자, 양장시조 실험 같은 시가 형식 창조의 선구자다. 대중이 널리 사랑하는 가곡의 작사가다.
이은상의 감동은?
애잔하고 은은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것이 아닐까.
시만 썼나?
기행문, 수필, 그리고 이순신과 사임당과 율곡의 일대기를 창작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정훈이다.
노산의 시 한 편을 고른다면?
아무래도 <가곺아>를 추천하고 싶다.
가곺아
−내 마음 가 잇는 그 벗에게
내고향 남쪽바다 그,파란물 눈에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물새들날으리 가곺아라 가곺아
어린제 같이놀든 그동무들 그리워라
어대간들 잊으리오 그,뛰놀든 고향동무
오늘은 다무얼하는고 보곺아라 보곺아
그,물새 그동무들 고향에 다잇는데
나는웨 어이다가 떠나살게 되엇는고
온갖것 다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대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마음 색동옷입혀 웃고웃고 지나고저
그날그 눈물없든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나면 모래판에서 가재거이랑 다름질하고
물들면 뱃장에누어 별헤다 잠들엇지
세상일 모르든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가 알아보나
내몫엣 즐거움은 아무대도 없는것을
두고온 내보금자리에 가안기자 가안겨
處子들 어미되고 童子들 아비된사이
人生의 가는길이 나뉘어 이러쿠나
잃어진 내깃븜의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없고 단잠들어 죄없은몸이
그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이는福된者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동무 노젓는배에 얻어올라 치를잡고
한바다 물을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츰은오고 거기 夕陽은저도
찬얼음 센바람은 들지못하는 그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살껴나 깨끗이도 깨끗이
一九三二年 一月 五日
漢陽 杏花村에서
≪초판본 이은상 시선≫, 이은상 지음, 정훈 엮음, 1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