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임영조 시선
여름 산행
더위 먹은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내가 여름 산에 당도하니
산은 이미 막달 찬 임부였다
간밤에 내린 비로 뒷물 막 끝낸
서늘하고 향긋한 몸내
홀리듯 계곡으로 몸 들이민다
(그럼 이내 쎅시한 허리 꿈틀
아무나 덥석 받아 줄 줄 알았지?)
그러나 여름 산은 내색이 없다
까닭 없이 변심한 애인처럼
표정 참 냉랭하고 무겁다
(이 머쓱한 화상을 어디 감추지?)
예라, 웃통을 홀랑 벗고 내가 눕는다
누워서 산을 받는 이 쾌감!
왜 몰랐을꼬? 이 손쉬운 열락을!
이다음 나 세상 뜰 때도
옳거니, 무릎 치듯 문득 떠나리
내내 기척 없던 매미들
쑤왈쑤왈 범어로 염불하는
저 아래 으슥한 숲 속
조루증의 사내들 대여섯이
식은땀 뻘뻘 개고기를 뜯는다
나무아미타불! 비호같이 내려가
모조리 산 채로 어흥! 관세음보살!
여름 한낮 꿈이 비리다.
≪초판본 임영조 시선≫, 윤송아 엮음, 124~125쪽
“가장 솔직한 꽃나무”
한 그루 심는 것을 생의 업으로 삼는다.
친숙한 일상이 시인의 숨결로 새 생명을 얻는다.
삶과 시, 속과 성, 일상과 초월이 하나로 만난다.
어흥!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