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 시선 초판본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 출간 특집2. 한국의 초현실주의 시
권경아가 엮은 ≪초판본 조향 시선≫
언어에 묶인 인간
우리 일상은 그물처럼 엮여 있다. 그러지 않아 보이지만 또는 볼 수 없지만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은 문법의 굴레 아래 있다. 현실이 무겁다면, 답답하다면 말의 그물부터 확인하라.
바다의 층계(層階)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폰폰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깃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초판본 조향 시선≫, 권경아 엮음, 38~39쪽
아코디언과 들국화, 수화기, 낙지 그림자가 무슨 관계인가?
아무 관계없다. 현실적으로 아무 인연이 없는 이질적인 사물들이다.
인연이 없는 사물들을 왜 함께 늘어놓았나?
데페이즈망 기법을 실험한 것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파괴하고 의식적으로 단절시킴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의미를 파괴한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시를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도구로만 생각하지 마라.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 전달’이 아니라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이다.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이 무엇인가?
말의 구성에 의해 생기는 특수한 음향, 예기치 않았던 이미지, 활자 배치에서 오는 시각 효과다.
활자 배치의 시각 효과란 무엇을 말하나?
위 시의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의 시행 모양을 보라. ‘바다의 층계’가 보이지 않는가?
의미가 아니라 이미지에 집중하는 이유가 뭔가?
순수한 이미지를 통해서만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고 절대와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절대와 본질이 초현실인가?
조향은 현실과 꿈의 변증법적 합일로 실현한 초현실이 본질 현실이라 여겼다.
조향의 초현실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데페이즈망 미학에 ‘현대의 검은 비극의 상황’을 결합했다.
‘현대의 검은 비극’은 무엇인가?
전쟁 이후의 암울한 사회 현실, 세계의 상황 악이다.
초현실주의자가 현실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그가 초현실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예술 이론이나 방법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유, 인간 해방을 위한 방법론으로 초현실주의를 택했다.
초현실이 어떻게 인간의 현실을 해방할 수 있는가?
제한된 의식 공간인 현실을 뛰어넘어 초현실에 도달할 때 인간은 무제한의 의식 공간으로 해방된다.
시에서 인간 해방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는 무의식과 몽상의 세계를 받아 적음으로써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하고 개혁 의지를 드러낸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검은색 이미지가 바로 현실의 상황 악을 상징한다.
어떤 시가 그런가?
<노르망디 항로 전야>, <검은 드라마>, <검은 시리즈> <어느 날의 지구의 밤>, <검은 신화>, <검은 전설>, <검은 칸타타> 등이다.
그는 정말 성공했는가?
일부 시에서 현실의 상황 악을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 기법으로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초현실주의 기법이 우리 현대 시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과 1950년대의 비극적 현실에 대응한 미학적 저항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
조향은 누구인가?
초현실주의 시인이다. 1917년 태어나 1984년 사망했다.
당신은 왜 이 시집을 엮었나?
조향은 생전에 시집을 단 한 권도 발간하지 않았다. 사후 10주기에 가족과 친지가 ≪조향 전집≫을 엮어 출간했으나 절판되었다. 1950년대 실험파의 선두 주자로, 한국 초현실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준 그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당신은 누군가?
권경아다. 한양대학교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