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시선 초판본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 출간 특집 5. 주요한의 민요시, 그 변절
김문주가 엮은 ≪초판본 주요한 시선≫
아버지가 되지 못한 아들
현실을 비난하다 투옥된 아들은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밤은 길고 끝은 알 수 없었다. 새벽을 기다리지 못한 아들은 밤을 부정한다. 달을 가리켜 해라 하고 태양의 불길에 뛰어든다.
이것이 <불노리>의 시인, 주요한의 작품이 맞는가?
그렇다. 그 시는 1919년 도쿄제일고등학교 재학 중에 써서 그해 2월 ≪창조≫에 발표했다.
한국 현대시의 효시를 날린 그가 이런 시조도 지었단 말인가?
그의 현대시는 발전하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자각한 뒤 민요시와 시조시로 회귀한다.
이 시에서 식민지의 늙은 농부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시사철, 하루 종일 노동해도 죽 끓일 양식이 없는 자신의 신세다.
그의 양식은 어디로 갔는가?
제국주의와 매판 자본, 봉건 지주의 수탈 때문이다.
그는 수탈의 현실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지난해 풍년 들어/ 곡식 말 남앗단 것/ 팔아서 호미 사니/ 호미갑시 더 빗삿네”, “황금 가튼 벼를 비어/ 도조 주고 빗 물면/ 남을 건 무엇 잇나”, “철로 길 고처 노면/ 누가 타고 댕길 것가/ 철로 길 생긴 뒤로/ 못사는 놈 더 엇네”같이 식민지 경제 현실을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식민지 농민에게 희망은 없는가?
있다. 팔자 없다고 떠들다 감옥에 갇힌 아들이다. 이 아들이 팔자에서 벗어난 세상을 만들 주체다.
여기서 팔자란 무엇을 뜻하나?
표면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체제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더 깊고 넓은 것이 있다. 곧 일본이 심어 놓은 숙명론, 패배주의다.
숙명론과 패배주의에 대해 그가 선택한 문학은 무엇인가?
민요시다. 민중에게 친근한 민요가 민족의식을 형상하고 민중에게 항일 저항 의식을 불어넣기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주요한은 항일 운동가인가?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한다. 이후 이광수와 함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메시지가 강한 항일 저항시를 창작했다. 그러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로 전향해 대일 협력시를 쓴다.
항일시가 대일 협력시로 전환되는 과정은 어떤 것이었나?
이전의 고양된 정신과 낭만적 이념은 그대로 간다. 저항의 대상이었던 일본을 ‘우리’ 속에 포함시키고 맞은편에 구미제국주의를 세운다.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다.
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부여의 꿈>에서 “달마중 다락 헐린 터에 해마지단을 세우리라”가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새로운 태양의 세계는 그의 이전 시편들이 대망한 ‘아침’과 ‘봄’의 나라다. 해방의 낭만적 정념이 일본 제국의 이념으로 몸을 바꾼 세계다.
낭만적 이념이 쉽게 몸을 바꿀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현실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지 못했고,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요나 시조에 대한 경사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요한 개인의 문제인가?
그의 개인사와 시 세계의 변화는 일제 강점기 한국 근대문학과 문인들의 생생한 초상이다. 식민지 현실의 한계를 그의 삶과 문학이 웅변한다.
그는 누구인가?
시인이자 언론인, 정치가다. 1900년 태어나 1979년 사망했다.
한국 문학에 무엇을 남겼나?
<불노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적 감수성이다. 한국 근대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자유분방한 정념의 표출과 산문시 형식으로 당대 한국 시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당신은 왜 이 시집을 엮었나?
주요한의 시는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도약, 한계와 파행을 사유하게 만드는 결절점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 세계가 정리된 시집은 거의 없다. ≪초판본 주요한 시선≫은 한국 근대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김문주다.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