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준 작품집 초판본
윤송아가 엮은 ≪초판본 현경준 작품집≫
식민지의 비뚤어진 인생
밀수범, 도박범, 사기범, 횡령범 그리고 아편중독자지만 한때는 기술자, 운동가, 예술가, 종교인, 의사, 교육자였다. 일제는 王道樂土를 약속하고 갱생을 제안한다. 부질없다. 뿌리가 없는데 꽃이 피겠는가?
“그야 물론 우리는 이 사회에서 인간의 취급을 받지 못하는 락오(落伍)의 무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의 온갖 박해라든지 조소에는 벙어리 노릇을 하여왔고, 귀먹어리 노릇을 하여왔고, 천치의 노릇을 하여오며 산송장의 생활을 하여온 것이 아니냐? 그렇지만 너는 무에냐?
너는 우리들을… 즉 지옥에서 헤매는 무리들을 개전(改悛)시켜서 다시금 참다운 사회인으로 맨들려구 자청을 하여온 소위 지도자라는 것이 아니냐? 설마 우리들에게 매질을 하려구 온 눔이야 아니겠지? 만약 그런 목적으루서 왔다면 나는 여기서 단언한다. 너 같은 눔은 지도는커녕 도리어 우리들의 근성을 더한칭 삐뚜러지게만 할 눔이다.
대체 네가 우리들을 알기를 어떻게 아느냐?
아편쟁이는 밸이 없다더냐?
아직은 피두 있구, 눈물두 있구, 신경두 있는 눔이다.
너 같은 눔의 주먹에 그저 죽었오 하고 드려댈 눔은 아니다.”
<유맹(流氓)>, ≪초판본 현경준 작품집≫, 현경준 지음, 윤송아 엮음, 46~47쪽
지금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주인공 명우다. 부락 자위단장 세준에게 뺨을 맞은 뒤 덤비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부락에 탈주자가 발생했다. 단장은 부락민을 모아 놓고 일제 검색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반응이 없다. 단장은 그중 젊어 보이는 명우를 다짜고짜로 때린다.
이 일이 지금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가?
만주국에서 범법자들을 교화하고 신흥 국가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 설치한 특수 부락이다.
만주국은 어떤 나라인가?
1932년에 일본이 중국 동북부에 세운 괴뢰 국가다. 관동군이 무단으로 통치했다.
범법자란 누구를 말하는가?
아편중독자, 밀수업자, 도박 상습범, 사기 상습범, 횡령범들이다. 한때는 기술자, 정치운동가, 예술가, 종교가, 의술가, 교육자였던 사람들이다.
명우는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나?
한때는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려 출품해 (*** 어디라는 언급은 찾을 수 없습니다.) 입선도 했지만 실연하고 방황하다 아편쟁이가 된 뒤 이곳에 수용되었다.
명우와 세준의 싸움은 어디까지 가는가?
보도소(輔導所) 소장이 나타나 중재한다. 그는 왕도낙토(王道樂土)를 건설하려는 만주국의 혜택을 모르고 비뚜로 나가려고만 하는 부락민들을 보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부락민의 반응은 무엇인가?
무관심하다.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옆 사람과 수군거리기도 하고, 산봉우리 위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한다. 뻔뻔스런 거짓말을 관두라며 비웃기까지 한다.
싸움은 여기서 끝인가?
그러지 못했다. 소장은 부락민의 비웃음에 분노해 명우를 비롯한 일곱 명을 2주일간 구류소에 보냈다. 구금을 마치고 돌아온 명우는 부락 주민 득수가 명보와 짜고 명보의 딸 순녀를 아편에 취하게 한 뒤 강간하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우는 순녀를 구하지만 다시 자위단이 동원되어 일제 심문이 벌어진다. 득수는 명우가 아편을 먹었다고 고발한다. 심문을 받지만 보도소 소장이 그를 따로 불러 용서해 주겠다고 말한다.
소장이 왜 이러는 것인가?
그는 명우가 “아직 양심의 쪼박찌나마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양심의 잔편(殘片)을 곱게 키워 이전과 같이 훌륭히 소생해 달라고 한다.
그는 소생하는가?
소장의 끈질긴 노력에 감화되어 소생의 실마리를 찾는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소장의 중개로 순녀와 혼인하기로 결심한다.
현경준은 <유맹>에서 일본의 만주국 통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인가?
표면상으로는 만주국의 ‘왕도낙토’ 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친일 관변문학의 모습이다. 뒷면에는 이러한 정책을 조롱하고 부정하려는 소극적 저항이 숨어있다. 일제의 검열을 의식한 문학적 선택이었다.
책에 실린 또 다른 작품 <탁류>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지식인 사회운동가의 내면 갈등과 저항 의지를 다룬다. 주인공 명식은 사회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세가 예상 밖으로 악화된 데에 실망한다. 그러던 중 예전의 신념을 지켜 나가는 은밀한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야학을 꾸려 저항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고향의 정세가 어떻게 달라졌나?
농촌 고유의 미풍이었던 향약이 일제의 ‘풍기 개량’과 ‘자력갱생’을 위한 정책 도구로 전락했다. 주민의 결속력과 상부상조의 미덕도 사라졌다. 명식의 가장 절친한 동지였던 유덕도 출옥 후 전향해 향약회 간사, 청년훈련회 간사, 자력갱생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면사무소 서기 자리까지 차지한다.
무엇이 탁류인가?
명식을 둘러싼 상황이다. 자신을 옥죄는 절망적인 식민지 현실이 마치 장마 뒤에 나타나는 검붉은 탁류 같다고 말한다. 흙탕물과 오물로 휩쓸린 사회를 정화하고 새로운 혁명의 물결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는 비유다.
현경준은 누구인가?
1909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1934년 문단에 데뷔한 뒤 상당수의 작품을 만주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현지 신문인 ≪만선일보≫를 통해 발표했다. 안수길, 강경애와 더불어 재만 조선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송아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