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 왜 소유권이 문제인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프런티어 4: ≪미디어 집중과 민주주의: 왜 소유권이 문제인가?Media Concentration and Democracy: Why Ownership Matters≫
언론이 진정 자유하려면?
언론비평가 리블링은 단언했다.
“언론 자유는 언론 소유자의 것이다.”
법학자 베이커는 확인한다.
언론의 핵심 문제는 가치와 구조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언론의 소유권 문제다.
미디어가, 소유권이 집중될수록
언론의 자유는 흔들리고 민주주의도 위험하다.
미디어 집중 현상이 발생한 배경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바람이 일면서 세계화가 전면에 등장했다. 여기에 국경 없는 세계를 실감케 해준 것이 IT와 방송계 뉴미디어들이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명분으로 미디어에 대한 탈규제 정책이 세계적인 대세가 됐고, 이를 발판으로 IT 및 미디어기업 간 초대형 인수합병이 러시를 이뤘으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가속화되었다.
미디어 집중 현상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나?
미디어는 민주주의를 표현하고 매개하는 수단이다. 미디어 집중은 미디어의 다양성을 훼손한다. 그만큼 의견의 다양성도 약화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우려되는 것이다.
미디어 집중에 대한 연구는 언제 시작된 것인가?
1983년, 베그디키언(Ben Begdikian)이 ≪미디어 독점≫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미디어 집중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이어서 1980년대, 1990년대 미디어 집중의 폐해를 실증적으로 밝히는 연구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연구가 진행되었나?
미국의 경우 신문에 대한 체인 소유가 사회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연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연구 방식은 무엇이었나?
통계적 데이터처리 기법을 활용한 경험적 연구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언론의 본래적 기능인 감시견(watchdog) 역할에 대한 평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신문의 소유권 형태가 삽화, 기사 길이, 지면 구성, 하드 뉴스의 비율에 미치는 효과들을 평가했다. 보도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고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변죽만 울리는 평가에 그친 셈이다.
실증적 방법론 아닌가?
너무 치우쳤다. 과학적이고 객관적 연구라는 신화에 집착한 나머지 실증적인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는 주제는 연구 가치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실증적 자료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공정한 민주적 과정이 가치 있는 것인가’라고 했을 때 이것을 입증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몇 년 전 미디어법이 도입될 때 대기업 자본의 유입이 언론자유를 신장할 것인가 혹은 콘텐츠의 다양성과 공익성을 증진시킬 것인가에 대한 증거를 모으려는 노력은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왜 그런 노력이 무의미한가?
자본의 성격만 정확히 인식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가치 있는 질문이어야만 현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언론처럼 정치사회적 가치를 흠뻑 담고 있는 분야는 더욱더 그렇다.
베이커(C. Edwin Baker) 교수는 가치 있는 질문을 했나?
기본적으로 언론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전제하고 미디어 소유권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더 큰 이념을 전제하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론의 산업화가 구체적으로 민주주의에 어떤 악영향을 초래하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분석한다.
언론학자들도 언론과 민주주의 관계에 대해 다루지 않았나?
언론학자들은 민주주의 개념을 뭉뚱그려 놓고 메시지의 다양성이라는 미시적 개념을 가지고 언론의 공익성을 손쉽게 설명하려 든다. 아니면 민주주의 개념은 한쪽에 접어두고 미디어 경제학의 패러다임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만 천착하여 산업정책을 논하는 경우도 있다.
베이커 교수는 다른가?
베이커 교수는 미디어의 이윤추구 논리가 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에 심대한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베이커 교수가 소유권 집중을 비판하는 논거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자원을 민주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규범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의 소유권을 분산하게 되면 선동적이고 비민주적인 권력을 방지하고 언론의 감시 기능을 더욱 증진시키는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들을 강화시킬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도 문제라고 보나?
그렇다. 언론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도구다. 따라서 경제적 효율성이나 상품성에서 언론의 가치를 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미디어법 도입 취지로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내세웠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비상식적 발상이다. 아예 대놓고 언론을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경쟁을 통해 좋은 콘텐츠가 생산될 수도 있지 않나?
미디어 산업과 상품의 고유한 성질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미디어 상품은 기본적으로 정신적 상품이기 때문에 그것의 품질을 객관적인 양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
한국의 미디어 집중은 어느 수준인가?
1991년 말 SBS의 개국을 신호탄으로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상업적 미디어와 채널들이 속속 등장했다. 당시 관변 언론학자들과 관료, 그리고 뉴미디어 사업자들은 한목소리로 탈규제를 외쳤다. 그 결과 그나마 미디어 정책의 공공성을 담보하던 공영방송마저 상업적 미디어에 포위되어 겨우 낡은 무늬만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 상황은 어떤가?
이제 우리 언론은 저널리즘의 본령을 내팽개치고 오직 이윤극대화에 혈안이 돼 있다. 더 이상 언론으로서의 품위와 제도적 위상을 유지하기조차도 힘든 지경이다. SNS와 팟캐스트들이 기존 언론을 대체하고 있는 데서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미디어 집중에 관한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내에선 미디어 집중 문제에 언제부터 관심을 두었나?
연구가 본격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언론의 내부적 모순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구들은 토대가 상부구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에서 언론사의 소유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보면 이 언론사가 태생적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최근 연구 추세는 어떠한가?
1990년대 중반부터 SBS가 자리를 잡고 케이블TV를 비롯한 뉴미디어 도입이 한창 쟁점이 되면서 소유 집중 문제는 논점에서 사라졌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상업적 언론사들이 대세를 이루게 되면서 연구 관심도 자연스레 미디어 시장과 산업 분석으로 옮겨 갔다. 그러다가 최근 미디어법 도입과 관련해 미디어 집중 문제가 반짝 쟁점이 되더니 지금은 다시 이 문제에 대한 연구 관심이 시들어가고 있는 추세다.
일관된 연구가 쉽지 않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축적된 연구 경향이라는 것도 딱히 짚을 수준이 못 된다. 요즘엔 외국의 흐름에 견주어 우리의 실정을 추정하는 정도의 정책 연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실정에 맞는 관점이나 분석틀이 없다. 무엇보다 미디어 집중 문제의 원천인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대단히 피상적인 수준의 연구에 머물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남궁협이다. 동신대학교 교양교직학부 부교수다.
추후 연구 계획이나 활동 계획은?
철학적 관점에서 현상을 읽어내려는 공부를 하고 있다. 언론학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겉멋에 취해 있다는 개인적인 반성 때문이다. 언론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실용적인 문제 해결 능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학문적으로는 깊이가 더욱 얕아지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이런 반성을 토대로 늦었지만 본질적인 문제부터 다시 짚어보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