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천리
미리 만나는 봄 2. 봄은 어느 곳에 ≪춘풍천리≫
봄은 어느 곳에
심훈
벌써부터 신문에는 ‘봄 춘(春)’ 자가 퍼뜩퍼뜩 눈에 띤다. 꽃송이가 통통히 불어 오른 온실 화초의 사진까지 박아 내서 아직도 겨울 속에 칩거해 있는 인간들에게 인공적으로 봄의 의식을 주사(注射)하려 한다. 노염(老炎)이 찌는 듯한 2학기 초의 작문 시간인데 새까만 칠판에 백묵으로 커다랗게 쓴 ‘추(秋)’ 자를 바라다보니 그제야 비로소 가을이 온 듯싶더라는 말을 내 조카에게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어제오늘 서울은 완연한 봄입니다”라고 쓴 편지의 서두를 보고서야 창밖을 유심히 내다보았다. 먼 산을 바라다보고 앞 바다를 내려다보지만 아직도 이 시골에는 봄이 기어든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산봉우리는 하얀 눈을 인 채로 눈이 부시고 아산만(牙山灣)은 근래 두 달 동안이나 얼어붙어 발동선(發動船)의 왕래조차 끊겼다. 그러다가 요즘에야 조금 풀려서 성엣장이 떠밀려 다니는 것이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어젯밤 눈바람에 시달리던 뜰 앞의 꽃나무에는 떨어지다 남은 잎새가 앙상한 가지에 목을 매단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돼지우리 위에 웅숭그리고 앉은 까치 두어 마리도 털이 까칠한 것이 아직도 추위를 털어 버리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어쩐지 봄은 내 신변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오줌장군을 짊어진 이웃집 머슴들이 보리밭으로 출동하고 땅바닥에 남아 있는 눈이 햇살이 퍼지기가 무섭게 녹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띄어서 그런지, 아무튼 앞으로는 봄이 나와 친분이 두터워질 것 같다.
<<춘풍 천리>>, 안재홍 외 지음, 이민희 역주, 103∼104쪽
언뜻 보면 봄날의 평범한 심상을 담은 글이다. 그러나 작가가 ≪상록수≫의 심훈이고, 쓴 시기가 1930년대다. 몇 대목 아래 이런 문장이 나타난다. “삼천리 어느 구석에 봄이 왔는지 모른다. 사시장철 한겨울같이 춥고 침울한 구석에서 헐벗은 몸이 짓눌려만 지내는 우리 족속은, 봄을 잃은 지가 이미 오래다.” 봄을 인공적으로 주사(注射)하는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심훈은 ‘혹시나’ 하고 새봄의 맥박을 짚는 한 구절의 시로 글을 마감한다. “몇 백 년이나 묵어서/ 구멍 뚫린 고목(古木)에도/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 움이 돋아나네./ 뿌리마저 썩지 않은 줄이야/ 파 보지 않은들 모르리.” 그의 바람대로 새 움이 돋아났다. 봄을 되찾았다. 봄을 봄으로서 즐길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