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라와 딤나 천줄읽기
우화한 세계 2. 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의 <<칼릴라와 딤나 >>
당나귀와 사자 이야기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
옛날 어느 숲 속에 사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자 곁에는 그가 먹다 남은 먹이를 얻어먹고 사는 자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자가 옴에 걸려 극도로 쇠약해지고 지쳐서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칼이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맹수의 왕이시여, 어인 일로 건강 상태가 악화되셨습니까?”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이 옴 때문이라네.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당나귀의 심장과 두 귀뿐이라네.”
자칼이 말했습니다.
“그건 문제없나이다. 마전장이의 옷감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는 곳을 제가 알고 있나이다. 어서 가서 제가 그를 전하께 데리고 오겠나이다.”
자칼은 곧장 당나귀에게 가서 안부를 물으며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수척해졌소?”
당나귀가 대답했습니다.
“주인이 아무것도 먹여주질 않는다오.”
자칼이 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주인과 함께 지내려고 하오?”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도망친들 무슨 묘안이 있겠소.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나를 부려먹고 굶주리게 하기는 마찬가지라오.”
자칼이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외떨어진 장소 하나를 소개해 주지요. 그곳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초가 많아 보기 좋게 살진 암탕나귀가 살고 있다오.”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그곳으로 날 데려가 주시오.”
자칼은 당나귀를 데리고 사자에게로 향했습니다. 자칼이 숲 속 사자에게로 가서 당나귀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자 사자는 그곳으로 달려가 당나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쇠약해진 사자는 당나귀를 덮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자에게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당나귀는 깜짝 놀라 도망쳐 버렸습니다.
자칼은 사자가 당나귀를 놓친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맹수의 왕께서 사냥감을 놓치시다니요.”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당나귀를 다시 한 번만 데려오너라. 그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야.”
자칼은 다시 당나귀에게로 가서 말했습니다.
“무슨 일로 그렇게 도망을 쳤소? 그 암탕나귀는 욕정으로 흥분하여 당신에게 뛰어든 것이라오. 당신이 만약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이내 당신을 부드럽게 대했을 것이오.”
당나귀는 이 말을 듣고 그 역시 욕정에 사로잡혀 큰 울음소리를 내고는 다시 사자에게로 향했습니다. 자칼은 당나귀를 앞질러 사자에게로 가서 당나귀가 있는 곳을 알려주며 말했습니다.
“당나귀를 속여 다시 데려왔사오니 준비를 하시옵소서. 다시 실패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이번에도 놓치시면 당나귀를 다시 데려올 수 없사옵니다.”
자칼의 독촉에 사자는 흥분해서 당나귀가 있는 장소로 갔습니다. 당나귀를 본 사자는 재빨리 달려들어 당나귀를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자칼에게 말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길 고기를 먹기 전에 목욕으로 몸을 청결히 해야 한다고 했느니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고기를 잘 보관하고 있도록 하라. 그럼 당나귀의 심장과 두 귀는 내가 먹고 나머지는 네 먹이로 주겠노라.”
사자가 몸을 씻기 위해 자리를 뜨자 자칼은 당나귀에게로 가서 그의 심장과 두 귀를 먹어치웠습니다. 그는 내심 사자가 이를 나쁜 징조로 여겨 당나귀 고기에도 입을 대지 않길 고대했습니다. 이때 사자가 돌아와 자칼에게 물었습니다.
“당나귀 심장과 두 귀는 어디 갔느냐?”
자칼이 대답했습니다.
“전하, 만약 당나귀에게 심장과 두 귀가 있었다면 그렇게 혼쭐이 나서 도망치고도 전하께 다시 돌아올 수 있었겠나이까?”
<<칼릴라와 딤나 >>, 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 지음, 조희선 옮김, 67-70쪽
≪칼릴라와 딤나≫는 아랍 풍자 문학의 효시다. 압둘라 이븐 알 무카파는 인도 설화집 ≪판차탄트라≫의 페르시아어 번역본을 다시 아랍어로 옮겨 정리했다. 인도, 페르시아, 아랍, 그리고 이웃 그리스의 사고와 지혜가 두루 녹아들었고, 풍자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