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리사 할로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9. <<클러리사 할로>>
완전한 번역
≪클러리사 할로≫는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이다. 총 8권이다. 번역문은 200자 원고지로 1만6492장이다.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 교수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번에 지만지가 한국어로 처음 완역 출간했다. 김성균은 3년을 번역했고 4년을 다듬었다.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원서의 이미지와 레이아웃 또한 최대한 반영했다. 작가의 모든 주석을 원전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대목에서는 한국어판의 해당 쪽수를 밝혔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완전한 판본 곧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아 완전한 분량을 옮긴 완전한 번역이다. 번역자에게 물었다.
왜 중요한 책인가?
영국 소설 발생기, 즉 18세기 중엽 소설이다. 영국 최초 소설이라고 알려진 <<패멀라(Pamela)>>의 저자 새뮤얼 리처드슨의 대표작이다. 그는 헨리 필딩, 토비아스 스몰렛, 로렌스 스턴과 함께 영국 소설의 처음을 이끈 사람이다.
내용은?
1751년에 출판된 수정 제3판은 총 8권, 2899쪽으로 영국 소설 중에서 가장 길다. 전체가 편지 형식으로 쓰인 서간체 소설이다. 그 방대한 지면에 어린 여주인공이 가출해서 겁탈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영국 사람들의 삶의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의미는?
인간관계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특히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 친구와 친구, 주인과 하인, 지주와 소작인의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있다. 읽으면서 해답을 얻고 깊이 감동하게 된다.
옛날 얘기 아닌가?
260여 년 전 한 영국 여자의 이야기다. 시공간의 차이 때문에 오늘의 한국 독자에게는 내용이나 형식이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 인간성의 근본은 동일하다. 성경은 2000년 전의 얘기아닌가?
왜 이제야?
한국에 전문 연구자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번역할 만큼 애착을 갖지 않았으리라.
독자는 있었을까?
그들의 관심도 지금까지는 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출판사는 있었을까?
방대한 분량 또한 이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주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설사 이 작품이 번역되었다 해도 한국의 어떤 출판사도 선뜻 출판할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어떤가?
최근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일본에서도 이 작품은 2004년에 처음 번역 출판되었다. 지금까지 거의 매년 개정판을 내고 있다. 우리가 그리 늦은 편은 아니다.
읽을 사람이 있을까?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원문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분들, 또는 시간이 없어서 영문판 축약본만 읽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서간체 소설의 장점은?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과 몇몇 주요 인물들이 쓰거나 받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모든 사건이 인물들의 의식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소설 창작에 관심 있다면 서간체 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기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사의 눈으로 본다면?
작품의 주제 뿐만 아니라 18세기 영국, 나아가 유럽의 모든 것, 예를 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도덕, 국제 관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이 그렇게 좋았나?
대학 학부때부터 깊이 감동하며 읽었던 소설이다. 대학에서 영국 소설을 강의하면서 항상 아끼고 중요하게 다룬 작품들 중 하나다.
번역은?
오랫동안 미루었던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정년퇴임이 임박한 2002년 7월부터 번역을 시작해서 출판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번역의 원칙은?
우리 독자가 느끼게 될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문화의 차이, 언어와 사고방식 그리고 가치관의 차이를 최대로 좁히는 것이다. 그래야 읽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영국 고전소설의 장황하고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읽기 쉽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재창작 또는 번안 수준의 작업이 필요한 때가 적지 않았다.
머리말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여자 친구와 두 명의 남자 친구가, 주로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그리고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여자들은 미덕과 명예를 으뜸으로 여기는 두 젊은 아가씨들이다. 그들은 서로 깊은 우정을 가지고 있으며, 재미로글을 쓸 뿐 아니라, 삶에서 지극히 흥미로운 문제들에 대한견해도 피력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가정들은이런 문제들이 다 자기들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자들은 방종한 생활을 상습적으로 하는, 문벌 좋은 유한계급의 신사들로서, 그중 한 사람은 온갖 술수를 구사하는 자신의 재주를 자랑으로 여기면서 친구인 상대방한테 자신의 음모 잘 꾸미는 머리와 당돌한 행동, 그리고 그 모든 비밀스러운 의도를 편지로 낱낱이 알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 이 남자들의 방자한 편지들이 그것을 읽는 젊은이들한테 도덕적으로 나쁜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독자들한테 드리는 말씀이다. 이들은 여성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난봉꾼임을 공언하면서, 자기들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어떤 여성한테도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그들의 악명 높은 좌우명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우스개로여기는 사람들은 아니며, 또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 할 기타 도덕적 의무에서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는 작품을 읽어 내려가면서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이들은 자주 상대방의 잘못을 비판하고 또 각자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반성한다. 이것은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그들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세의 상과 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앞으로 언젠가는 개과천선하겠다고 공언한다. 실제로 이들 중 한 사람은 새사람이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친구의 경망한 글솜씨와 경박한 마음가짐을 비판한다.
그림은 찰스 랜드시어(Charles Landseer R. A.)가 클러리사 할로를 그린 작품 <보안관 사무실의 구치소에 갇힌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 in prison room of the sheriff’s office exhibited)>(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