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 불바
지만지 4월 신간 5. 고골에 대한 황당한 오해
김문황이 옮긴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В. Гоголь)의 ≪타라스 불바(Тарас Бульба)≫
우리의 오해와 고골의 진면목
우리는 오랫동안 그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독실한 러시아정교회 신자였다. 가톨릭교도인 폴란드인, 유대교도인 유대인, 이슬람교도인 터키인, 이교도인 타타르인, 그리고 여성 대부분을 악마로 여기는 이 작품을 보라.
“아들아, 왜 너의 폴란드 놈들이 너를 도와주었냐?”
안드리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팔아먹었느냐? 신앙을 팔아먹었느냐? 자신의 동료들을 팔아먹었느냐? 당장, 말에서 내려라!”
그는 어린애처럼 순순히 말에서 내려, 타라스 앞에 죽은 듯이 멈춰 섰다.
“가만히 서 있어라. 움직이지 마라! 내가 너를 낳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죽이겠다!” 타라스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어깨에 멘 총을 끌어내려 손에 잡았다.
안드리의 얼굴은 아마포같이 창백해졌다.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국의 이름도 아니고, 어머니의 이름도 아니고, 형제들의 이름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폴란드 여인의 이름이었다. 타라스는 총을 발사했다.
마치 낫에 베인 곡물의 이삭처럼, 그리고 심장 밑에 치명상을 입은 어린 양처럼, 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한마디 말도 못하고 풀밭에 쓰러졌다.
≪타라스 불바≫, 니콜라이 고골 지음, 김문황 옮김, 198쪽
아름다운 폴란드 여인은 누구인가?
안드리가 신학교 생도 시절 우크라이나의 골목길을 방황하다가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오랫동안 못 보다가 폴란드의 두브노를 공격할 때 다시 만난다. 알고 보니 적장의 딸이었다.
둘의 관계는 어떻게 재연되는가?
카자크인들이 두브노를 포위하자 폴란드인들은 식량난에 허덕인다. 그때 그녀가 안드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안드리의 배신이란 사실인가?
그녀에게 빵을 가져다준다.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적을 도운 것이다. 급기야 폴란드 편에 가담해 카자크인들과 맞선다.
아버지 타라스 불바는 누구인가?
조국과 러시아정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민족인 폴란드인과 타타르인을 개처럼 보는 우크라이나 카자크인이다. 조국과 신앙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는 인물이다.
그는 왜 폴란드를 침공하는가?
폴란드인들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카자크인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폴란드 카톨릭 사제들의 마차를 말이 아니라 러시아정교인들이 끈다는 소문도 듣는다. 그와 카자크인들을 분노에 휩싸인다. 폴란드를 공격하게 된 이유다.
아들까지 전장에 데리고 간 이유가 뭔가?
학교보다는 전장에서 진정한 학문, 산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두 아들에게 말한다.
자기 자식에게 학교보다 전쟁터가 더 낫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는 그런 사람이다. 젊은 카자크인들이 용감한 기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아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버지에게 살해된 안드리는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오스타프다. 용맹하게 싸우다가 포로가 된다. 바르샤바로 끌려가 처형된다.
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변하는가?
호전성이 더욱 강해진다. 결국 폴란드인에게 잡혀 화형당한다.
이 작품으로 작가 고골이 던지는 메시지는 뭔가?
러시아 땅과 러시아정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타라스의 애국심,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오스타프의 용맹, 그리고 여인의 매혹적인 외모에 이끌려 파멸하는 안드리의 속물성을 그린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정교회 신앙과 슬라브주의 애국심이었기 때문이다.
고골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 아니었나?
명백하게 말하건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소련 시절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앞세우다 보니 고골 작품까지 사실주의 문학에 집어넣었고 그 후 그렇게 알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고골은 어떤 작가인가?
낭만주의, 환상문학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타라스 불바≫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사실적 묘사인 듯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골의 독특한 문학 장치인 비현실성과 황당무계함을 교묘히 섞어 넣어 텍스트 이면의 낭만성, 초현실성, 그리고 상징성을 강조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시대적 배경의 혼동이다. 첫 장면은 그의 두 아들, 오스타프와 안드리가 키예프 신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키예프 신학교는 1631년에 설립된 키예프-모길랸 아카데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시간적 배경은 17세기 중엽이다. 그러나 불바의 집을 묘사할 때 거실 벽에 장식된 것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러시아정교와 가톨릭의 통합 운동에 반대해 벌어진 전투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16세기 말 우크라이나 공간이다.
이 작품의 비현실성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
카자크인들의 잔인한 행동을 묘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유대인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장면, 간난아이를 살육하고 어린아이를 창으로 찔러 불타는 성당으로 던져 넣는 장면, 폴란드 여인의 유방을 도려내고 폴란드인 다리 껍질을 벗기는 장면 등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
고골이 이렇게 잔인한 묘사를 사용한 이유는 뭔가?
가톨릭교도인 폴란드인, 유대교도인 유대인, 이슬람교도인 터키인, 이교도인 타타르인, 그리고 여성 대부분을 악마로 간주하는 자신의 문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벨렌스키의 고골 광신도론이 사실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것도 오해다. 무신론자인 벨린스키에게는 독실한 러시아정교회 신자인 고골이 광신도처럼 비쳤다. 그래서 광기의 작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벨린스키의 오버다.
고골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그는 평생 ‘죽음’, ‘심판’, ‘공포’, ‘두려움’을 간직한 채 살았다.
왜 그렇게 살았나?
독실한 정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문황이다. 충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