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미학
“예술의 발전이 사회적 상황과 정신성에 근거하듯 타이포그래피 표현 영역도 같은 배경에서 변모해 왔다. 때로는 명쾌한 소통의 도구로, 타락된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으로, 당대의 기술 발달을 증명하는 결과로 타이포그래피는 시대마다 자신의 소임과 역할에 충실했다.”
‘타이포그래피의 본질과 기능’, ≪타이포그래피 미학≫, viii쪽.
타이포그래피가 뭔가?
글자를 다루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좋을 글꼴을 선택해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좋은 글꼴의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신타이포그래피’로 유명한 얀 치홀트는 자획 끝이 돌출되지 않은 글꼴, 곧 산세리프 계열 글꼴의 사용을 철칙으로 삼았다.
산세리프체의 장점은?
명료성이다. 얀 치홀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된 타이포그래피에 불만이 많았다.
뭐가 못마땅했나?
장식성이 너무 과하다고 봤다. 당시 타이포그래피는 구텐베르크 활자 발명 이전의 수공예 판본에서 디자인 발상을 얻었다. 기계문명에 대한 반동이었다.
뭘 보면 알 수 있나?
윌리엄 모리스의 ≪제프리 초서 작품집≫ 타이포그래피를 보라.
장식성이 과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읽기의 수월성과 정보 전달의 명료성이 떨어진다. 심미성을 과하게 추구한 탓이다.
얀 치홀트가 생각한 타이포그래피란 어떤 것인가?
독자가 책을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지식과 정보를 올바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이포그래피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모던의 기획에 충실한 셈이다.
모던의 기획이 뭔가?
규칙과 규범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이행함으로써 이성적 사고를 돕는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에서는 기능성과 실용성의 추구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하면 뭔가?
얀 치홀트는 이렇게 요약했다. “새로운 규칙은 옛날의 그것보다 간결하고 유연해야 하며 실용화되기 쉬워야 하고 기계 조판에 적용 가능해야 함과 아울러 손 조판과 기계 조판의 공존이 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타이포그래피의 정전인가?
그렇지는 않다. 기능이 아니라 표현에 중심을 두는 타이포그래피의 계보가 존재한다. 시각 매체로서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다.
표현 중심 타이포그래피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타이포그래피들이다. 마리네티의 <자유를 위한 말>, 후고 발의 <다다의 시>를 보라. 글자의 언어적 의미보다 시각적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다.
아방가르드가 시각 표현을 앞세운 까닭은 뭔가?
기존 언어 규칙과 관례가 당대 유럽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 공포, 기술 맹신, 타락한 도덕규범을 비판하기 위해 충격적이고 폭발력 있는 표현 양식이 필요했다. 곧 아방가르드의 타이포그래피는 현실에 대한 도전과 혁신을 내포한다.
표현의 계보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포스트모던적, 탈중심적 타이포그래피다. 모던이 추구하는 질서와 조화에 대한 반작용에서 출발했다. 어떤 규칙에 근거한 완벽함 대신 새롭고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를 추구한다.
포스트모던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은 뭔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개인화 현상이 특징이다. 타이포그래피의 표현 양상과 제작 주체가 다원화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새로운 시각적 표현과 조작이 가능해졌다. 타이포그래퍼의 의도를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피터 모제르의 전시 포스터 작품, 데이비드 카슨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디자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모습인가?
기능 중심 타이포그래피와 표현 중심 타이포그래피가 부침을 반복하다가 지금은 두 양상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글자를 통한 정보와 지식, 사상의 전달이라는 고유의 책무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이 책, ≪타이포그래피 미학≫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타이포그래피 표현의 변천사와 함께 그 본질과 기능, 미학을 정리했다. 글과 글자를 접하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동빈이다. 동덕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 시각디자인전공 교수다.
2702호 | 2015년 7월 28일 발행
문자는 언제 아름다운가?
김동빈이 쓴 ≪타이포그래피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