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오 크뢰거
4월의 신간. 고독이라는 직업
윤순식이 옮긴 토마스 만(Thomas Mann)의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길을 잘못 든 시민
시민의 길은 곧다. 실종을 방지하는 이정표와 속도를 통제하는 신호등,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이 빽빽하다.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유별나서 만사에 충돌하는 것일까? 어째서 선생님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며,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있으면 왜 이렇게 낯선 이방인이 될까? 저 선량한 학생들, 저 착실하고 평범한 아이들을 좀 보라지. 그들은 선생님들을 우스꽝스럽게 생각지도 않고, 시도 쓰지 않으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할 뿐이야. 자기들이 아주 정상적이라 느끼며, 모든 세상사, 모든 세상 사람들과 화합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 분명해! 그건 정말 속 편한 일이겠지…. 그런데 대체 난 왜 이 모양일까? 앞으로 어쩌자고?’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윤순식 옮김, 11~12쪽
주인공이 유별난 학생인가?
토니오 크뢰거다. 독일 사람들 감각으로는 그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토니오는 이탈리아식 이름이고 크뢰거는 발음에 긴장을 요하는 전형적인 북독일의 성씨이다. 이름 자체에서 남국과 북국의 혼합을 연상케 한다.
이 소설은 토니오 크뢰거의 이야기인가?
주인공의 열네 살 시절부터 시작한다. 성장 후 소설가로 활동할 때까지를 이야기한다.
14세의 토니오는 어떤 소년이었나?
시와 음악을 좋아한다. 그는 모범생 미소년 한스 한젠을 이상형으로 삼는다. 예술과는 인연이 먼 한스는 토니오에게 별 관심이 없다.
소녀와의 만남은 없는가?
16세 때 토니오는 댄스 강습장에서 쾌활한 미소녀 잉게를 만난다. 그녀에게 마음을 두지만, 그녀도 한스와 비슷한 기질을 가졌다. 성장한 후 토니오는 낯선 곳에서 한스-잉게 커플과 마주친다.
그의 연인은 누구인가?
작가가 된 토니오는 내적으로 고뇌와 고독의 여파를 겪는다. 그는 이 고민을 연인인 화가 리자베타에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그를 가리켜 ‘길을 잘못 든 시민’이라고 말한다.
길을 잘못 든 시민의 다음 행로는 어디인가?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북쪽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던 길에 고향도 들러 본다. 이국땅의 호텔에서 한스와 잉게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다.
북쪽으로의 여행에서 그는 무엇을 보는가?
소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한편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시민적인 세상에서 살기란 어렵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런 소회를 편지로 써서 리자베타에서 부치며 이야기는 끝난다.
‘시민적 세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속세, 세인(世人), 생활인, 평범한 사람의 세상’이라고 보면 된다. 대개 일상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예술하고는 인연이 멀다.
리자베타의 지적, 곧 ‘토니오는 길을 잘못 든 시민’은 어떤 의미인가?
원전에서는 이 부분이 두꺼운 활자로 처리돼 있다. 시민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자전 이야기인가?
그런 요소들이 꽤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항구도시 뤼베크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의 고향은 항구도시다. 어머니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점, 주인공이 작가가 된다는 점은 일치한다.
그는 어떻게 자랐는가?
1875년 6월 독일 북부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작가 하인리히 만이 형이다. 학창 시절의 추억은 별로 좋지 않다. 그는 권위적인 학교 운영자의 매너리즘을 비판했으며, 그들의 정신과 훈육, 수업 방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 16세 때 가정에 어려움이 닥친다.
16세 때 그가 겪은 불행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해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업인 곡물상이 망했다. 이 역시 소설 속 설정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어머니가 재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의 작가론은 무엇이었나?
예술가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상인들과 같이 생활해서는 안 되고 항상 아웃사이더로서 관찰해야 하며, 언제나 고독이란 짐을 지고 뒷전에서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술가는 생활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 바깥에 서서 그것을 작품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관찰한 독일 사회는 어떤 것인가?
독일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를 비판했다. 1912년에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예술가에게 비판을 가했다. 나아가 ‘빌헬름 시대’ 독일의 군인정신 및 프로이센적 도덕주의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나치 정권 때는 무사했는가?
그들의 무서움을 예견한 것 같다. 1933년 히틀러 수상 취임 2주 뒤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 강연 여행을 핑계 삼아 독일을 떴다. 히틀러 집권 직후 약 2년 동안은 나치를 자극하는 발언을 극도로 삼갔다. 이것이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망명을 두고 ‘독일을 배반했다’고 말한다. 1935년부터 <유럽이여, 경계하라!> 등을 발표하며 나치를 비판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독일 배반론’은 타당한가?
아니다. 진정으로 독일을 사랑했기에 국외에서 반독재 운동을 했다고 봐야 한다. 1945년 이후엔 귀국할 수 있었는데도, 그냥 스위스에 머물렀다.
왜 독일이 아니라 스위스에 있었는가?
조국에 대한 애착이 컸다는 방증이다. 동·서독으로 갈라진 판에 어느 쪽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죽을 때까지 세계 평화와 독일 통일을 진심으로 염원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순식이다. 덕성여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