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테질레아
이원양이 옮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의 ≪펜테질레아(Penthesilea)≫
어둡고 무질서한 참혹과 광란
고상한 단순성과 조용한 위대성을 사랑한 괴테는 그를 거부한다. 사후 100년, 니체가 걷게 될 길을 그가 연다. 클라이스트는 독일 모더니즘의 선구자가 된다.
그녀가 외칩니다. “쫓아가라. 티그리스! 쫓아가라, 레네!
쫓아라, 스핑크스! 멜람푸스! 디르케! 쫓아가라, 히르카온!”
그리고 그에게 달려듭니다. 개 떼를 몰아치며 달려듭니다. 오, 디아나!
그의 철모 장식을 잡고서 그를 쓰러트립니다.
그가 추락하자 땅이 진동합니다!
그는 자기가 흘린 붉은 피 가운데 허우적대며,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펜테질레아! 나의 신부여! 무엇을 하는 거요?
이것이 당신이 약속했던 장미 축제인가?”
하지만 그녀는− 배가 고파 눈 덮인 황야에서
울부짖으며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암사자라도 그의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녀는 그의 갑옷을 찢어 버리고,
그의 흰 가슴을 물어뜯습니다,
그녀와 개들은 앞을 다툽니다,
옥수스와 스핑크스는 오른쪽 가슴을,
그녀는 왼쪽 가슴을 물어뜯습니다.
그녀의 입과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립니다.
≪펜테질레아≫,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이원양 옮김, 224∼226쪽.
이것이 무슨 참혹과 광란인가?
그녀가 그가 싸워 그녀가 이기는 장면이다.
그녀와 그는 누구인가?
아마존족 여왕 펜테질레아와 요정 테티스의 아들이자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다.
미친 것인가?
그녀는 무장하지 않고 전장에 나타난 그를 맹렬히 쫓는다. 화살이 그의 목을 관통하자 개 떼와 함께 그의 가슴을 물어뜯는다.
참혹의 사연이 뭔가?
그녀는 먼젓번 전투에서 이긴 줄 알았다. 그를 포로로 고향에 데려가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투에서 이긴 것은 아킬레우스였다. 그는 오히려 그녀를 프티아로 데려가 여왕으로 삼으려 한다.
착각과 욕망의 혼돈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그가 그녀에게 진실을 밝힌다. 그러고 다시 한 번 전투를 제안한다.
아킬레우스의 속셈은 무엇인가?
전투에서 펜테질레아에게 지는 것이다. 포로가 되어 그녀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사랑에 빠진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사랑은 왜 불가능한?
아킬레우스는 가부장적인 그리스 사회를 대표하는 남성이다. 자신에게 복종하는 여인만 사랑할 수 있다. 펜테질레아는 아마존족 관습을 따른다. 무력으로 정복한 남자만 사랑할 수 있다. 모순이다.
복종하지 않으면 죽여야 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투에서 상대를 죽이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소될 수 없는 대립, 둘의 사랑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비극의 끝은 무엇인가?
광란 상태에서 연인을 죽인 그녀는 아마존 전사들에게 돌아간다. 자기가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는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자결한다.
잔혹한 결말에 대해 당대의 반응은 무엇이었나?
호평보다는 거부가 더 컸다. 화가인 도라 슈토크는 “그의 펜테질레아는 소름 없이 들어 줄 수 없는 괴물”이라고 혹평했다. 정신분석학자 크라프트에빙은 이 작품을 “완전한 여성 사디즘의 가공스럽고 허구적인 그림”이라고 평했다.
괴테가 “펜테질레아와는 아직도 친근해질 수가 없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괴테와 실러로 대표되는 바이마르 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 예술과 문학을 이상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 특징은 “고상한 단순성과 조용한 위대성”이었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밝고 명랑한 아폴로의 세계만 보았던 것이다. 그에 반해 ≪펜테질레아≫는 어둡고 무질서한 디오니소스의 도취적인 세계에 속한 작품이었다. 괴테는 이 작품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1911년에 이 작품이 다시 살아난 사연은 무엇인가?
그해는 클라이스트 서거 100주년이었다.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막스 라인하르트가 연출한 <펜테질레아>가 공연되었다. 여기서 클라이스트는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우뚝 선다. 이어서 니체의 문화철학이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현재 <펜테질레아>는 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클라이스트는 누구인가?
독일 문학에서 중요한 고전 작가다. 34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10여 년간 작가로 활동했다. 사후에야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진가가 알려졌다. 특히 모더니즘을 선취한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생전에 공연한 희곡이 두 편뿐인가?
<깨어진 항아리>와 <하일브론의 케트헨>이다. 특히 <깨어진 항아리>는 괴테 연출로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왜 실패했나?
클라이스트는 괴테가 1막짜리 희극을 3막으로 나눠 공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괴테는 “재치 있고 유머가 두드러진 소재와 달리 신속한 사건 진행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반론했다.
왜 자살을 한 것인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여러 차례 친구와 동반 자살하겠다는 생각을 표명했다.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가족 간 불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하의 연인 헨리에테 포겔과 함께 베를린 근교에 있는 호숫가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때가 서른넷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원양이다.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