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세 소극선
남편:내기할까, 꼼짝 않기?
아내:입술하고 눈꺼풀도.
남편:두 푼 내기야.
판돈은 걸어야겠지.
아내:난 절대로 안 움직여.
끝까지 버틸 수 있어.
남편:어떻게 할까?
아내:여기
십자가처럼 앉아서,
신부나 목사가 와도
절대 말을 하면 안 돼.
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으면 부처님보다
더 평온할 거야.
남편:좋아!
그러면 지는 사람이
저녁까지 사는 거야.
아내:조용! 움직이면 안 돼.
<땜장이>, ≪프랑스 중세 소극선≫, 지은이 모름, 정의진 옮김, 35∼36쪽
누가 이기는가?
아내다. 땜장이 때문이었다.
그는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땜질 거리를 찾아 이 집에 들렀다 부부가 꼼짝 않는 것을 보고 장난을 시작한다.
어떤 짓을 했나?
남편 머리에 냄비를 뒤집어씌우고 손에 주걱을 얹어 본다. 반응이 없자 두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한다.
남편은 어디서 허물어지는가?
땜장이가 아내를 희롱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들고 있던 주걱으로 그를 두들겨 팬다. 내기에 진 남편이 아내와 땜장이에게 술을 사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이것이 소극인가?
그렇다. 출발은 막간극이었다. 살아남은 유일한 전통 희극 양식이다. 공연 시간이 30분 안팎으로 짧고 무대도 제한적이다.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는다.
언제 나타났는가?
13세기 말경 <소년과 장님>, <주엔 부인 이야기> 같은 대화 형식 우화에서 유래했다. ‘소극’이라는 이름의 희극 장르가 성행한 시기는 1450년부터 1550년 사이 100년간이다.
공연의 풍경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축제 때, 국왕과 영주가 방문할 때, 결혼식 같은 잔치가 있을 때 공연했다. 장터에서 퍼레이드처럼 공연되기도 했다. 주로 성사극이나 도덕극과 함께 공연되었다.
왜 함께 공연되었나?
종교극과 도덕극의 막간, 또는 말미를 장식하면서 관객의 지루함을 달래 주고 긴장을 풀어 주는 보조 공연 역할을 했다.
1550년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에 휩쓸려 위기를 맞았다. 로마 교황청이 종교극에 대한 지원을 끊고 1548년에는 상연을 금지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소극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박하고 저속하다는 이유였다.
부활의 전기는?
17세기, 몰리에르 시대에 접어들어 살아난다. 17세기 중반 코메디아 델라르테 양식을 가미한 소희극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8세기 내내 주춤하던 소희극은 19세기 라비슈, 페도 같은 보드빌 작가를 거쳐 20세기 이오네스코에게로 맥을 이어 갔다.
이오네스코의 소극은 어떤 모습인가?
“비극적 소극”이라고 불린다. 소극에 비극적 색채를 더해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극화했다. “부조리를 직감케 하는 희극적인 것이 비극적인 것보다 더 절망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 중세 소극 작품이 얼마나 남아 있나?
작자 미상인 200여 편이 중세 말엽에 출판되어 지금까지 전한다.
이 책은 어떤 작품을 엮었나?
<빨래통>, <땜장이>, <구두 수선공 칼뱅>, <파테와 타르트> 네 편이다. 소극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 부부 싸움 등이 소재로, 당대 서민들의 일상을 반영한 이야기들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의진이다. 경희대에서 프랑스 공연 예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2684호 | 2015년 7월 15일 발행
소극, 비극보다 더 절망적인 희극
정의진이 옮긴 ≪프랑스 중세 소극선(Quatre farces du Moyen 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