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서, 미디어 현상학
플루서의 미디어 현상학과 디지털 계몽주의
김성재가 쓴 <<플루서, 미디어 현상학>>
디지털 코드의 계몽
그림이 문자에 깨지고 문자는 비트에 깨진다.
공간은 선이 되고 선은 평면이 된다.
디지털 코드는 역사를 비트로 붕괴시키고 다시 조합한다.
기구 전체주의가 허물어지고 호모 루덴스가 인간이기를 주장한다.
“인간이 문자 텍스트를 통해 계몽에 성공하기까지는 300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디지털 코드로 21세기의 새로운 계몽에 성공하는 데는 몇 십 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것이 플루서의 전망이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체계’, <<플루서, 미디어 현상학>>, vi에서
문자 텍스트를 통한 계몽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문자 텍스트는 그림의 요소를 찢어내어 줄로 나열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썼다. 지옥 같은 분위기에서 인간을 구제한 것이다. 문자의 계몽은 신화 깨기였다.
계몽의 대상은 무엇인가?
문자 이전에 그림이 있었다. 전통적 그림은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 시작되었다. 신, 영혼 불멸, 시간의 순환을 내포하는 코드였다. 마술적 의식에 기초한 그림 속의 요소는 숭고하고, 상하좌우 올바른 자리를 차지하며 불변성을 띠었다.
계몽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인간 삶의 역동에서 시발되었다. 인간의 역동적 삶은 그림의 불변성을 깨야만 하는, 문화의 규칙 위반에 직면한다. 규칙 위반은 신의 보복을 의미했다. 그림은 기도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은 우상숭배라는 환상과 집단 광기에 사로잡혔다. 이때 문자 텍스트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문자 텍스트의 혁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15세기 활자 발명 이후 19세기까지 문자 텍스트의 역동성은 이성 중심의 과학언어와 추상 개념을 범람시켰다. 텍스트를 과거의 그림처럼 불투명하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텍스트의 신비화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인간은 선형코드가 형성한 역사 의식과 책 속에 갇힌 광기에서 인생의 무의미함을 느꼈다. 그들은 텍스트의 세계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 그것은 평면코드가 만든 새로운 그림, 즉 기술적 형상의 세계다.
디지털 코드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20세기 말 기술적 형상의 하나인 디지털 코드는 컴퓨터라는 기구를 이용해 역사를 비트로 붕괴시키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디지털 코드의 계몽은 역사 깨기다.
역사가 어떻게 깨지는가?
디지털 코드는 원본을 모방하는 전통 그림과 다르다. 문자 텍스트의 개념을 분석하고 계산한 정보를 공급받아 원본이 없이도 가능성의 세계를 설계하는 새로운 그림이다. 비트의 요소를 조합한 그림은 프로그램에 충실한 계산요소를 의미한다.
비트의 그림은 어떤 것인가?
이 그림은 추상적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향한 움직임의 산물이다. 우리는 디지털 코드를 통해 문자를 초월한 초언어적 코드로 애니메이션 같은 컴퓨터 그림을 창조할 수 있고, 그 그림을 문자로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플루서는 그 능력을 ‘기술적 상상력’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지구촌의 기술적 상상력은 어떤 수준인가?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와 디지털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어둠 속에서도 키보드를 더듬는 네티즌이 큰 폭으로 늘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역사를 평면코드의 프로그램으로 바꾸고, 이 프로그램을 다시 텍스트로 해독하는 능력을 빠른 속도로 획득했기 때문이다.
기술 상상력의 비전은 무엇인가?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가 낳은 전 우주적 ‘기구-전체주의’에 저항하는 민주적 프로그램 실행이다. 이 전략은 담론, 곧 정보의 분배와 저장이 대화, 곧 정보의 합성과 창조와 균형을 이루는 텔레마틱 사회를 통해 컴퓨터 앞에서 호모 루덴스가 책임감 있게 상호 게임에 동참할 것을 겨냥한다.
호모 루덴스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유희의 인간은 순수한 미학, 곧 순수한 체험과 순수한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이기(Menschensein)’를 실현한다.
대립물은 무엇인가?
대중매체는 정보를 중앙집중적으로 송출한다. 권력과 자본의 지배도 받는다. 이러한 송신자 중심의 송출 회로도를 민주적 동참이 가능한 대화회로도로 재구축하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합의가 필요한 정치의 문제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미지 창조자, 영화 제작자, 컴퓨터 사용자 같은 조용한 신혁명가의 적극 참여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정치 무관심은 디지털 계몽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디지털 계몽의 현실은 어디까지 왔나?
플루서가 30년 전에 예측한 디지털 계몽 전략은 거의 실현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처럼 디지털 기구에 정치와 자본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개입은 계몽을 역방향으로 전개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플루서의 전망은 무엇인가?
문자는 텍스트의 선명성과 차별성으로 이성과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역사의 발전을 주도했다. 그러나 텍스트의 전문성과 추상성 때문에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이제 인류는 과학기술의 산물인 카메라와 컴퓨터로 전개된 새로운 그림의 세계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디지털 코드의 미래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대화망 구축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의 전망이다. 플루서는 커뮤니케이션 철학과 이론 영역의 독보적 사상가다.
이 책, <<플루서, 미디어 현상학>>은 무엇을 다루나?
플루서는 인류문화사를 미디어에 운반되는 코드의 발전사로 파악한다. 이 책은 플루서의 미디어 현상학을 다룬다. 핵심 주제는 미디어를 연구하는 데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다. 현상학은 후설이 주장한 대로 우리가 무엇을 볼 때 그것을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사물과 의식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성재다.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