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 이혼하다
독일 현대 희곡 신간 ≪피가로 이혼하다≫
세상의 모든 혁명
폭력을 사용한 전복이다. 더러운 세상을 단 한 번에 세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산을 뚫고 고속도로를 만드는 방법이고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성은 역사이고 선택이며 자유이고 생태계다. 전복되어도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삶이다.
백작: 24시간 전부터 자꾸 물어본다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명예 잃은 도둑처럼 조상의 나라를 몰래 떠나, 목숨만 구하려 하는지 말이야.
피가로: 높은 가문에서 태어난 백작이고, 가장 많은 유산과 높은 급여를 받고, 재판을 주관하지요. 그걸로 충분한 범죄가 되지 않습니까? (애매하게 미소 짓는다.)
백작: 최근 며칠 동안 일어난 사건은 이해할 수가 없어. 폐하가 살해되고, 귀족은 쫓겨나고, 맞아 죽고, 재산은 강탈당하고, 교회는 파괴되고, 성은 약탈당하고…. 빵집 조수가 대원수가 되고, 제화공은 대통령 그리고 서기가 런던 대사가 되다니! 특권계급이 없어지고, 방랑자나 영주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라니, 동등한 권리. 안 돼, 이런 불의가 계속될 수는 없어, 그 모두가 신의 법칙을 무너뜨리는 거야! 어떤 인간도 그런 일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거야.
피가로: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 외에는 말이지요.
≪피가로 이혼하다≫ 외된 폰 호르바트 지음, 김미란 옮김, 9쪽
어떤 장면인가?
혁명을 피해 국경을 넘는 도중에 피가로와 백작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백작 눈에 비친 혁명은 부당하기만하다. 신분질서가 사라지고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는 혁명 상황을 백작은 ‘불의’라 일축한다. 피가로는 여전히 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작을 비웃고 있다.
어떤 작품인가?
호르바트가 망명 시기에 쓴 것으로 보마르셰의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지는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알마비바 백작 부부와 피가로 부부는 혁명지에서 탈출한다. 백작은 여전히 신분주의에 젖어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피가로는 망명자 신분으로 소득도 없이 씀씀이만 큰 백작 곁을 떠나 다시 미용사가 된다. 그러나 수산네는 얼마 못 가 벌이에만 신경 쓰며 손님들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삶에 실망하고 백작에게 돌아가려 한다. 수년 후 피가로는 고국으로 돌아가 성 관리인이 되고, 늘 그리워하던 수산네를 불러들인다. 그녀와 함께 성으로 돌아온 알마비바 백작에게는 명예를 되찾아 준다.
주제는 무엇인가?
망명자들의 고달픈 삶을 묘사하면서 혁명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에 대해 풍자한다.
여기에 묘사된 혁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암시하나?
시간 배경이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지므로 프랑스 혁명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러시아 10월 혁명이나 독일 민족사회주의당의 폭력적인 집권을 암시하기도 한다.
시점이 불투명한 까닭이 무엇인가?
극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이 극을 우리 시대에 진행하도록 했다. 혁명과 망명 문제는 첫째,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고, 둘째, 우리 시대가 특히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희극에서 일어난 혁명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혁명을 의미한다. 모든 폭력적 전복은, 우리가 중시하기도 하고 경시하기도 하는 인간성이라는 개념과 얽힌 관계에서 공통분모를 갖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한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를 말하나?
1936년에 이 작품을 썼는데 독일 내 민족사회주의가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나치는 인종주의를 내세워 유대인, 집시 등 소수민족을 학살했고,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했다. 이 모든 일들이 ‘민족 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었다.
민족혁명의 얼굴은 작품에서 어떻게 묘사하나?
1막 2장에서 국경을 넘다가 발각된 수산네는 자신들이 떠나온 혁명지를 ‘범죄와 약탈, 살인’이 난무하는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3막에서 아이들이 성으로 돌아온 알마비바 백작을 총살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혁명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이 드러난다.
혁명에 대한 호르바트의 관점은?
혁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완전히 반혁명적인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을 성에 받아들이고 명예를 되찾아 주면서 이제야 비로소 혁명이 승리했다고 말한다. 파괴적이고 과격하던 혁명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알마비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적 면모를 지닌 사회주의” 관점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등장인물이 익숙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마르셰 작품에서 소재와 인물을 차용했다. 그는 ‘피가로’ 외에도 ‘돈 후안’처럼 문학작품, 오페라, 신화에 나오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을 소재로 취해 변형했다. 이는 관객을 좀 더 강하게 작품에 몰입하도록 한다.
호르바트는 누구인가?
민중극 작가로, 현재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 중 하나다.
어떻게 살다 갔나?
1901년 피우메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1920년에 처음 글쓰기를 시작해 1924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빈 숲 속의 이야기>와 <카지미르와 카롤리네>로 인정받았으며 카를 추크마이어 추천으로 클라이스트상을 수상했다. 나치의 감시와 제재를 피해 망명을 거듭하다 1938년 파리에서 벼락에 맞아 쓰러지는 나무에 치여 죽었다.
그가 1960년대에 재조명되기 시작한 이유는?
1970년대 초에는 ‘호르바트 르네상스’라 할 만큼 작품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으며, 현재는 명실상부한 현대 고전 작가로 평가된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럽 각국을 떠돌다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요절했다. 1970년대에 크뢰츠, 슈페어, 투리니 같은 작가들의 신민중극 작품이 독일 연극계를 휩쓸면서 1930년대 비판적 민중극 작가로서 호르바트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민중극이 무엇인가?
민중 극장에서 상연된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에 관한 연극을 말한다. 서민 또는 하층민이 등장하며, 이들은 무대에서 전통적인 희곡 언어인 운문이나 표준어가 아니라 방언과 같은 민중어를 사용했다. 작가와 연출가는 관객 취향을 고려해 대중적인 레퍼토리에 몰두했다.
신민중극 작가들이 호르바트를 주목한 이유는?
그가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 개인의 운명을 일반적인 사회적 위기의 징조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현실감 있으면서도 시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주로 썼으며 호르바트 스스로 그것을 ‘민중극’이라 불렀다. 그는 단순 오락거리였던 것에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결합해 민중극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소시민 ‘의식의 폭로’를 목표로 이전 민중극의 내용과 인물, 언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했다. 특히 소시민 계층의 언어인 ‘교양은어’를 통해 그들의 의식을 폭로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교양은어’가 무엇인가?
소시민 계층이 교양을 과시하려고 사용하는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나 문구, 문장을 말한다. 그들은 실제보다 더 높은 신분에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교양은어를 사용했다.
‘교양은어’를 민중극 언어로 사용한 까닭은?
당대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호르바트가 묘사하는 소시민은 교양은어를 부적절한 맥락에서 잘못 사용한다. 또한 실제 행동과 별개로 말로만 교양 있는 체한다. 이처럼 교양은어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사용되는 순간마다 그들의 의식이 무심결에 드러난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미란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독일언어문화학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