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1. 삐라
2635호 | 2015년 6월 15일 발행
한국전잰과 미디어 생활 1/10
삐라
2,500,000,000장, 한반도를 덮었다
하늘에서 25억 장을 뿌렸다.
삐라는 인민군의 품속에 간직되었다.
단순하고 유치한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전쟁은 불안하고 목숨은 단순하다.
소리 없는 총성이 전쟁의 주인을 바꾸었다.
한국전쟁기 삐라는 ‘들리지 않는 총성’이고 ‘종이 폭탄’이며, ‘심리전의 보병’이 었다. 미 육군부 장관 페이스(Pace)가 ‘적을 삐라에 파묻어 버릴 것’을 명령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전쟁수단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지 3일째 되던 6월 28 일, 미 극동군 심리전과에서 무려 1176만 장이나 되는 삐라를 처음 제작, 살포했다. 그해 10월 말에 1억 장, 1951년 1월 26일에 2억 장을 돌파했으며, 11월 말까지 8억 장을 넘어섰다. 전쟁 발발에서 휴전까지 25억 장 이상의 삐라 가 살포되었다. 이렇게 살포된 삐라는 소구 대상자들에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안 전보장증명서 형식의 삐라는 포로로 잡힌 대부분의 적병사가 소지하고 있었 고, 공산당의 하급 간부들까지 만일을 위해 소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에서 피난가지 못한 남한주민들은 유엔군의 삐라를 받 아보고 미군이 남한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 었다. 뉴스를 접하기 어려웠던 농촌 지역에서 삐라는 전황을 전하고 아군을 격려하는 중요 수단이었다. |
삐라에 담긴 정보는 대부분 매우 한정적이고 반복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삐라는 한국전쟁기 가장 중요한 심리전 매체였다고 할 수 있다.
김영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전쟁기 미디어와 사회>>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