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10. 뉴스릴
2654호 | 2015년 6월 26일 발행
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10/10 뉴스릴
대한늬우스, 대한뉴우스, 대한뉴스 그리고 끝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대중은 극장에서 뉴스를 봤다.
뉴스릴은 다큐멘터리다. 사실 전달이 임무다.
<대한늬우스>는 정권을 홍보하고 국민을 단속했다.
1994년 12월 31일,
생명이 끝났다.
텔레비전이 자리 잡기 전까지 뉴스는 영화처럼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초창기 다큐멘터리의 한 유형인 뉴스릴(newsreel)이 그것이다. 전 세계의 사건·사고를 기록·보도한 뉴스릴은 다큐멘터리의 전통 과제를 공유했는데, 바로 공공을 대변하는 객관적 시선으로 공적인 주제를 묘사·설명·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라틴어 어원인 ‘도쿠멘툼(documentum)’이 ‘알게 하다(faire apprendre)’ 혹은 ‘가르치다(enseigner)’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동사 ‘도체레(docere)’에서 파생된 것과도 상통한다. |
그런데 뉴스릴은 종종 ‘특정 사상이나 이념을 교육하고 확산하는’ 프로파간다 미디어가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양 진영이 전쟁을 위한 선전 도구로 뉴스릴을 활용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후 프로파간다적 뉴스릴은 196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베리테 운동, 1970년대 중반 급격하게 발전한 텔레비전 저널리즘에 밀려 점차 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시보>라는 뉴스릴이 제작, 상영되었다. 이후 1948년 <대한전진보>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53년부터 <대한늬우스>란 타이틀을 달게 된다. 주로 국내외 사건·사고를 보도했으며, 특히 정부 방침 홍보와 국민 단속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전쟁 종식 이듬해에 상영된 위의 <대한늬우스> 영상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늬우스>는 일방적 정부 홍보에 머물렀기 때문에 당시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텔레비전 뉴스가 등장하고 ‘시의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대한늬우스>는 <대한뉴우스>, <대한뉴스>로 이름이 바뀌어 제작되다가 1994년 12월 31일 2040호를 끝으로 종영한다.
차민철,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다큐멘터리>>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