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한국문학 3. 장편 소설 ≪초판본 원형의 전설≫
2640호 | 2015년 6월 17일 발행
한국전쟁과 한국문학 3. 장편 소설
전쟁이 부른 문학, 실존주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모든 것이 부서진다.
전통, 가족, 체면, 우정이 산산조각 나고 계급의 강고한 벽마저 무너진다.
위대한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간단한 물음이 나타난다.
인간이란 원래 무엇인가? 이것저것 다 버리면 마지막 남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다.
“그럴 때가 아니요! 빨리 도망쳐요! 빨리빨리!”
“달아나면 죽습니다!”
“네놈 때문이다! 내가 죽는다면 네놈 때문인 줄 알아라!”
그때까지도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있었던 이도무는 아들을 때려죽이고도 싶었지만 그럴 사이가 없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마누라가 가리키는 대로 뒷마당으로 뛰어내려 가지고 담에 매여달렸읍니다.
그러나 총소리가 더 빨랐읍니다.
이도무의 뚱뚱한 몸은 쭈르르 담벽을 흘러내리면서 땅에 꾸겨졌읍니다.
“나아리님들이요− 나아리님들이요−”
쓰러진 남편에게로 달려간 마누라는 완장을 잡아 뜯어내는 것이었읍니다.
“이게 안 보입네까! 이 빨간 헝겊이 안 보입네까? 아이고 죽었고나! 아이고 내 사람이 죽었고나!”
≪초판본 원형의 전설≫, 장용학 지음, 홍용희 해설, 32~33쪽
≪원형의 전설≫은 북한 의용군이었다 국군이 된 이장의 비극적 생을 그린 실존주의 장편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