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시선
박석이 옮긴 ≪한산 시선(寒山詩選)≫
석 자면 충분했다
한산은 이름을 모른다. 한산에 살아서 한산이라 부른다. 삼언시를 즐겨 썼다. 한 구가 석 자로 이루어진 시다. 너무 짧지 않을까? 인생도 그리 길진 않다.
한산의 길 오르는데
한산의 길 오르는데
한산의 길은 끝이 없구나.
계곡은 길어서 돌무더기 가득하고
시내는 넓어서 풀들 무성하구나.
이끼가 미끄러운 것은 비와 상관이 없고
솔바람이 우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로다.
누가 세상의 근심 뛰어넘어
더불어 흰 구름 가운데 앉으리오.
登陟寒山道
寒山路不窮
谿長石磊磊
澗闊草濛濛
苔滑非關雨
松鳴不假風
誰能超世累
共坐白雲中
한산 지음, 박석 옮김, ≪한산 시선≫, 21쪽
한산이 어디 있는 산인가?
중국 절강성 천태산의 어느 자그마한 봉우리다.
시인의 이름도 한산인가?
시인이 한산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후대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한산에게 한산은 어떤 지점인가?
실제 지명이다. 그리고 모든 번뇌가 사라져 차가우리만치 고요한 시인의 마음, 나아가 그의 깨달음의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도 마음이 고요해지면 바로 한산에 이를 수 있다.
한산의 고요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태고의 청정과 신령스러움을 간직한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는 비가 오지 않아도 미끄러운 이끼를 느낄 수 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절로 우는 소나무를 볼 수 있으며 산봉우리에 오르지 않아도 “흰 구름 가운데” 앉을 수 있다.
한산의 산수 시는 어떤 개성이 있는가?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찾을 수 없는 선(禪)의 정취가 있기 때문이다. 한산의 시 중 산수 시가 가장 뛰어나다.
무엇 때문에 가장 뛰어난가?
감정과 경치가 하나가 되는 정경 합일, 시심과 선심이 서로 어우러지는 시선 융합의 경지 때문이다.
그의 시는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
오언시가 대부분이고 칠언시와 삼언시다. 삼언시는 비록 여섯 수밖에 되지 않지만 다른 데서는 예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시형이다. 한 수 한 수가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다.
삼언시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한 행에 석 자만 적은 시다.
어떤 것이 있는가?
<한산은 깊어>를 보라.
한산은 깊어/ 내 마음에 맞네./ 순수한 흰 돌이고/ 황금이 아니어라./ 샘물 소리가/ 백아의 금 튕기면/ 종자기가 있어/ 그 소리 아네.
寒山深/ 稱我心/ 純白石/ 勿黃金/ 泉聲響/ 撫伯琴/ 有子期/ 辨此音
왜 삼언시를 썼는가?
혹자는 전통에 대한 반항 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시(禪詩)에서 중시하는 언어 너머의 여운을 강조하기 위해 가능한 한 글자 수를 줄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산은 누구인가?
당나라 중엽에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근처에 살았던 어느 은자다. 그는 승려는 아니었지만 불교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그래서 후대 문수보살의 화신이라는 전설도 생겼다. 한산은 자신을 완벽하게 감추었기 때문에 그의 실명이 무엇인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태주 자사로 있었던 여구윤의 기록만 전해진다.
여구윤은 뭐라고 썼는가?
거지 차림으로 국청사에 내려가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때로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승려들에게 멸시를 받았지만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했다.
국청사의 승려들은 왜 그를 멸시했는가?
우선 승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교계에서는 출가자들의 자부심이 대단해서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웬만해서 인정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종파의 차이라고 짐작된다. 한산은 당시 새롭게 일어나던 선종의 가르침에 심취해 깨달은 사람이다. 그런데 천태산 국청사는 천태종의 본산이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천태종의 스님들은 불립문자를 주장하면서 한 마음 돌이키면 바로 부처의 자리라는 선종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산과 불교의 관계는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도교와 유교의 사상도 나타나지만 불교적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구어체에 가까운 평이한 어투로 불교의 교리를 쉽게 설명하거나 불교적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깨우치려는 작품이 많다.
중국 시문학사에서 한산의 위치는 어디인가?
중국 정통 시단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과 불교계에서는 꽤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당나라 시대에 이미 한산 시를 언급한 선사들이 등장했다. 송대 이후에는 고려와 일본에도 널리 유포되었다.
일본에서 한산은 무엇이 되었는가?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는 한산 시에 대한 주석본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승려들이 한산 시에 대해 주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하이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마쓰오 바쇼 또한 한산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로 보건대 한산 시가 일본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가를 알 수 있다. 한산 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영어로 번역되어 구미 사회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이는 일본의 선승들과 선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당신이 엮은 이 책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그의 시는 312수가 전한다. 판본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다. 이 책에는 그중 비교적 유명하거나 한산의 시 세계를 잘 드러낸다고 간주되는 시 65수를 추렸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석이다.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