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햄릿(Hamlet)
우리 인간의 영원한 갈등
저질러? 그러고 죽는다, 잠든다. 잠들 뿐이다. 그럼 꿈을 꾸겠지. 아, 그게 문제로구나.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 말아? 그러고 죽으면 잠들고 꿈꾸고 아, 그게 문제로구나
햄릿: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이 포악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아니면, 무기를 들어
밀려오는 고난의 바다에 대항해
이를 근절시키는 것이 더 고상한 일인가?
죽는다, 잠든다, 그뿐이다.
잠듦으로써 육신이 받는온갖
고통과 번뇌를 끝장낼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바라는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죽는다, 잠든다. 잠들 뿐이다.
그럼 꿈을 꾸겠지.
아, 그게 문제로구나.
우리가 이 삶의 굴레를 벗어났을 때,
죽음과도 같은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가,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구나.
그것이 바로, 이 기나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94쪽
또 어떤 문제로 햄릿은 갈등하고 있는 것인가?
부친이 삼촌에게 살해당했단 사실을 그 혼령으로부터 전해들은 햄릿이 복수를 주저하며 갈등하는 장면이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제4독백이다.
‘참느냐, 마느냐’는 “To be or not to be”의 번역문인가?
원문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다. “참느냐, 마느냐?”, “사느냐, 죽느냐?”, “있음이냐, 없음이냐?”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삶과 죽음, 진실과 허위, 존재와 무에 대한 햄릿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사다.
그가 복수를 주저하는 이유는?
복수하되 “마음을 더럽히지 말라”. 유령의 요구다. 복수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자아를 극복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쉽게 취하지 못하는 햄릿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 말고도 주저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주저하는데 또 얼마나 많은 이유가 있는가?
의식과 무의식에서 그 원인을 찾는 정신분석 비평, 감상적이고 명상적인 성격 또는 그의 우울증에서 원인을 찾는 성격 비평이 있다. 또 당대에 대립했던 가치관과 시대정신 측면에서 해석하는 역사 비평도 있다. 햄릿의 복수 지연에 대한 이런 해석들이 곧 작품 전체를 해석하는 주요 관점이다.
당대 상반된 가치관과 시대정신이란 뭘 가리키는가?
친족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을 명예로 간주했던 앵글로색슨족의 오래된 전통, 생명과 이성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말한다. 두 가치관의 대립은 복수가 지연되는 것을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만든다. 햄릿의 심리에서 회의주의와 비관주의라는 당대 지식인들 사고방식도 엿보인다.
‘참느냐, 마느냐’ 를 고민하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명예’가 달려 있을 땐 지푸라기를 두고라도 싸워야 한다. 그에게 명예는 중요한 덕목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더럽혀진 어머니의 명예, 그리고 자식 된 자로서의 명예가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복수를 주저한다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불명예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햄릿의 고민은 끝을 보았는가?
“아, 지금부턴 마음을 독하게 먹자. 그렇지 않으면 난 바보 등신이지!” 제7독백에서 이렇게 선언한 이후로 햄릿의 내밀한 심경을 드러내는 독백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서 진행되던 갈등이 종결되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도 무리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복수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하나?
자신을 ‘덴마크의 왕자’로 자각한다. 자신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공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숙부 클로디어스를 처단하는 것을 아버지 죽음에 대한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병든 조국을 치유하는 공적인 임무라고 여긴다.
햄릿의 복수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클로디어스의 죄는 어떻게 입증되나?
이미 클로디어스의 계략이 드러난 상태다.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 살해하려던 계획이 발각되었고 독이 든 포도주도 왕비가 삼켰다. 그녀는 죽으면서 포도주에 독이 들었다고 외치고 레티어스도 죽으면서 살해 계획을 고백한다. 이제 클로디어스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햄릿이 독 묻은 칼로 그를 찔러 죽인 일은 정당방위이자, 공적인 정의 실현이 되는 셈이다.
<햄릿>은 어떤 작품인가?
모나리자 같은 작품이다. 빛을 굴절시켜 수많은 아름다운 색조를 만들어 내는 프리즘이다. 읽는 사람의 입장, 처한 상황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창출한다.
뭘 얘기하려는 것인가?
정의와 불의의 대립, 그리고 복수다. 존재와 무, 삶과 죽음, 실체와 허구, 진리와 거짓의 대립 또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이 작품의 절대 가치는 무엇인가?
내면 갈등과 그의 성격이 모두 독백으로 표출된다. 이 독백들은 셰익스피어가 언어의 천재임을 입증하는 작품의 백미다.
왕자도 없는 오늘날 한국, 독자에게 <햄릿>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대사회는 햄릿이 살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불의, 실체와 허구, 이성과 격정, 사랑과 미움이 늘 대립하고, 질서를 유린하는 힘이 존재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삶에서 겪는 불균형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다. 우리는 부패한 사회를 살아가는 도덕적인 주인공 햄릿의 체험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비추고 성찰할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그가 묻힌 성 트리티니 교회 흉상 아래 새겨진 문구처럼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이다.
어떻게 살다 갔나?
1564년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에 태어났다. 어려서는 고전과 성경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11세에 문법학교에 입학해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을 배웠다.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나 타고난 언어 구사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는 그를 대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생전에 희곡 37편 외에도 장시와 소네트를 발표했다. 1616년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대 평가는 급락 급등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존 벤슨의 상반된 평가가 흥미롭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그를 두고 한때 “라틴어는 신통치 않고, 그리스어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했던 그는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인 1623년에는 그리스·로마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며 “그는 어느 한 시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왕정복고 문학을 주도했던 존 드라이든 역시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는 찬사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4대 비극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하나?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다. 모두 원숙기 작품으로 인생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들 작품에서 햄릿 외에도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 악인 이아고, 야심에 찬 맥베스, 비극적인 왕 리어와 그의 세 딸 코델리어, 거네릴, 리건 등 걸출한 인물들을 창조했다.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되었나?
그가 무대 위로 불러낸 등장인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셰익스피어를 셰익스피어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언어다. 그의 언어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깊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종환이다.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