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응당 시선
배규범이 옮긴 ≪허응당 시선(虛應堂詩選)≫
득도의 욕망
밥을 굶고 살을 태우고 성기를 자른다. 도에 대한 욕망이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누가 도를 찾는가? 내가 없는데 도는 있을까?
발가벗고서 곡기 끊은 스님에게 보이다
부처가 되는 일이 고행과 무슨 관계있던가.
몸 고단케 하여 부질없이 온전한 마음 상했구려.
발가벗고서 보이는 도(道)는 부처님 법이 아니요
곡기 끊고서 구한 진리는 참된 선(禪)이 아니라네.
서암(瑞岩) 스님이 항상 주인공 부른 일을 배우되
남악(南嶽) 스님처럼 애써 벽돌 갈아 거울 만드는 일은 관두게나.
스님이란 도가 차야 현묘한 이치 깨닫는 법이니
이것이 만고에 도 닦는 사람의 큰 이치인 것을.
示裸衣絶穀僧
作佛何關苦行堅
勞身徒自損心全
裸衣觀道應非法
辟穀求眞不是禪
須學瑞岩常喚主
莫敎南嶽故磨磚
僧那爲滿開玄訣
萬古修行人大詮
≪허응당 시선≫, 배규범 옮김, 187~188쪽
도를 닦지 말라는 말인가?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서암이 주인공 부른 일이 뭔가?
당나라 승려 서암사언화상(瑞岩師彦和尙) 이야기다. 그는 매일 반석 위에 앉아 “어!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예” 하며 자문자답했다. 혼자서 “깨어 있어라!” 하고 “예”라 답하고,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마라!” 하고 “예” 하고 답했다.
그 자문자답에서 뭘 배우라는 말인가?
‘참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깨달음은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남악 스님의 화두는 무엇인가?
당나라 승려 남악회양(南嶽懷讓)과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문답이다. 남악이 물었다. “대덕께서는 좌선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마조가 답했다. “성불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남악은 암자 앞에 있는 바위에다 벽돌을 갈았다. 마조가 무엇을 하냐고 묻자 남악은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라고 답했다. 마조는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라고 반문했다. 남악이 답했다. “좌선을 해서 어찌 성불을 하겠느냐?”
허응당이 누구인가?
조선 중기 스님이다.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이고, 법명은 보우다.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금강산 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에서 수련하고 학문을 닦았다.
불교 억압 시기 아니었나?
암흑기였다. 억불과 숭유가 국시였다. 보우 스님은 우리 불교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조선 불교를 위해 한 일이 뭔가?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사찰을 보호했다. 1551년에는 선종과 교종을 복구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1552년 4월, 연산군 때 폐지된 승과제도(僧科制度)를 되살렸다. 이로써 승려의 자질이 향상되었고 휴정(休靜)·유정(惟政)과 같은 고승들이 발탁되었다.
억불 시기에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문정왕후의 비호로 제도를 갖출 수 있었다. 그는 탁월한 수행력과 불교·유교에 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다. 그중에서도 재상 정만종(鄭萬鍾)과는 특별했다. 그의 소개로 문정왕후와 인연을 맺었다.
유자의 반대가 없었나?
왜 없었겠는가? 유생들은 선교 양종과 도첩제·승과제 폐지를 요구했다. 승정원·홍문관·예문관·사헌부에서 매일 번갈아 보우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좌의정이 백관을 인솔하여 계(啓)를 올리는가 하면 성균관 학생들은 모두 종묘에 고(告)하고 성균관을 비우기까지 했다.
그래서 요승(妖僧)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된 것인가?
요승이니 괴승이니, 문정왕후와 부적절한 관계이니 하는 수많은 모함이 있었다. 이이(李珥)는 <논요승보우소(論妖僧普雨疏)>를 올리기도 했다.
문정왕후 사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유학자들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명종은 그를 죽이지 않고 제주도로 귀양 보냈다.
살았나?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변협은 무슨 이유로 보우를 죽였나?
자세한 내막은 기록이 없어 확정하기 어렵지만, 당시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 보낸 것은 가는 도중에 죽거나 도착해서 죽이기 위한 중신들의 의도였다. 변협은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보우의 순교지는 어디인가?
제주시 조천리다. 고관사가 들어서 스님의 명복을 빌고 있다.
그의 사후 조선 불교는 어디로 갔는가?
양종제, 승과제가 폐지되고 억불정책이 되살아난다. 이후 한국 불교는 철저한 암흑기로 들어간다.
이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1959년 일본 천리대학아야사토연구소(天理大學あやさと硏究所)에서 간행한 ≪허응당집≫ 상·하권에는 600수가 넘는 시가 실려 있다. 이 중 보우 스님의 선시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 97편을 선별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배규범이다. 중국 화중사범대학 한국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