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구조: 보들레르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장희창이 옮긴 후고 프리드리히(Hugo Friedrich)의 ≪현대시의 구조: 보들레르에서 20세기 중반까지(Die Struktur der modernen Lyrik: Von Baudelaire bis zur Mitte des zwanzigsten Jahrhunderts)≫
예술 상상력 제조법
가장 단순한 사물에 무를 각인하면 가장 친숙한 것에서 근원적 불가사의가 발생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형상을 증류하는 활동이다. 무가 남고 존재와의 중력장에 상상력이 나타난다.
시인은 불협화음으로 진술한다. 한정된 말로 불확실성을, 간단한 문장으로 복잡한 것을, 하나의 근거로 근거 없는 것을, 하나의 연관으로 연관 없는 것을, 시간을 표시해 공간과 무시간성을, 마술 같은 언어의 힘으로 추상을, 엄격한 형식으로 자의적 내용을, 감각 형상으로 불가시적 형상을 기술한다. 이것은 시어의 현대적 불협화음이다. 이해시키기 위한 언어와는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그래도 언어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어떤 음향과 의미를 생성할지 예견할 수 없는 피아노의 건반과 같이 언어가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어와 함께 홀로 있을 뿐이다. 언어만이 그들을 구제한다.
≪현대시의 구조≫, 후고 프리드리히 지음, 장희창 옮김, 411쪽
현대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불협화와 비규범성이다. 현대 시인들의 보편적 특징이다.
왜 불협화가 일어나는가?
언어의 자율적인 운동체, 의미에 구속되지 않는 음향의 연속이 현대시다. 그러한 시는 구체적 전달 내용이 없긴 하나 어쨌든 언어이기 때문에 독자를 매혹시키면서도 혼란스럽게 한다. 그 결과 불협화가 일어난다.
비규범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현대시에는 언어의 불협화와 동시에 비규범성, 다시 말해 비정상성의 느낌이 뿌리를 내린다. 이전 시대에는 긍정적 언어로 시를 평가했다면, 이제는 부정적인 범주가 집중적으로 반복된다. 모호함, 음울, 격렬한 상상력, 분열, 파괴, 무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현대는 언제인가?
보들레르 이후 약 100년간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와 결별하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모더니즘으로 지칭될 수 있는 현대성의 시인들이 나타났다.
프랑스 시인을 주로 다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에 따르면 20세기 시를 지배하는 기본 유형이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시는 독일의 노발리스와 미국의 포의 영향을 받은 보들레르 이후 윤곽이 드러났으며 랭보와 말라르메에 의해 극한의 경계 지점에 도달했다.
현대 시인들을 관통하는 정신 상황은 무엇인가?
기술 문명, 노동 소외, 곧 인간적 영역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시대의 부자유로부터 오는 고통이었다. 이러한 징후는 프랑스 시인들을 비롯해 스페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후계자들에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비규범적인 언술과 상상력의 독재를 통해 정신의 자유를 구출하려 한다.
이 책이 보들레르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매개로 루소, 디드로, 노발리스로부터 시와 상상력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였다. 유럽 최초로 현대시와 예술 개념의 이론을 정립하고 현대성을 체화했다. 무엇보다도 시와 개인의 심정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시와 개인의 분리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악의 꽃≫에 수록된 시를 보라. 주체는 결코 보들레르 자신의 경험적 자아가 아니다. 현대성을 대표하는 중성적인 자아가 시 창작의 주체다. 보들레르는 철두철미하게 현대성의 산물인 불안, 무출구성, 좌절 같은 생의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간다. 건축 공학적으로 형식화한 언어가 그 결과물이다.
랭보는 보들레르와 무엇이 다른가?
현대 문명의 저주 속에서도 체계를 만들었던 보들레르와 달리 랭보에게서 저주는 혼돈이 되었고 마침내는 침묵이 되었다. ≪악의 꽃≫이 엄격한 형식에 따라 구축된 긴장을 보였다면 랭보에게서는 그것이 절대적인 불협화가 된다.
랭보의 목표는 무엇인가?
미지의 것에 도달하기, 불가시적인 것을 보기,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기였다. 그의 시는 현실을 넘어 폭발적으로 돌진한다. 욕구 자체를 방출한다. 그 결과 현실을 탈형상화하고 내용 없는 긴장의 극을 남긴다.
랭보가 현실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꿰뚫고 공허한 비밀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의 공허한 비밀을 들여다 보았다. 경험을 무의식의 혼돈에 내맡겼다. 그래서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은 랭보를 그들의 선구자로 여겼다.
현실의 파괴는 초월에 대한 열정인가?
현실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공허한 초월과 대비된다. 해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 초월은 공허하다. 초월에 대한 열정은 현실성에 대한 무목적적인 파괴로 향한다. 이 파괴된 현실성은 미지에 대한 도달 불가능성이라는 혼돈의 표지다. 이러한 경향을 현대성의 변증법이라 부를 수 있다.
말라르메가 모더니즘 시학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들레르 이후에 정립된 이론, 곧 예술적 상상력의 본질은 현실의 탈형상화에 있다는 견해를 완결 지었다. 상상력에 존재론적 토대를 부여했다. 절대 존재, 무를 가장 단순한 사물에 각인시켜 수수께끼로 만들었다. 친숙한 것에 근원적인 불가사의함을 부여한 것이다.
후고 프리드리히는 어떤 사람인가?
독일 출신으로 로망스어문학을 연구한 학자다. 1978년 사망하기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저술을 많이 남겼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모더니즘 시학의 고전이다. 모더니즘의 기본 개념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체도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깝다. 시로 쓴 시론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희창이다.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