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
문명 비평, 러시아 사상 신간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
우리의 신들림과 광기
1934년, 스탈린과 히틀러와 자본주의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말한다. “신들림과 광기의 조직화가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정신이 영혼과 육체의 자기주장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인간은 내적 전일성과 균형을 잃게 된다.” 2012년에도 영혼과 육체는 제로섬을 향해 내달린다. 우리의 전일성은 안전한가?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은 어떤 책인가?
현대의 성격을 면밀하게 분석한 베르댜예프의 역사철학서다. 1922년 소련에서 추방된 베르댜예프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소련에 수립된 공산주의 정권, 이탈리아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파시즘, 독일의 집권 세력이 된 국가사회주의를 목격하면서 자신의 역사철학적 관점을 발전시켜 이 책을 완성했다.
현대의 성격은?
비인간화다. 인간이 통합적인 모습을 상실한 채 단편화되었다고 보았다.
근거 있나?
첫째는 기술 문명이다. 기술 문명은 인간들에게 이런저런 기능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노예로 전락하고 기술만이 중시되었다. 둘째는 국가 체제다. 소련 공산주의, 독일 파시즘, 서구 자유주의는 얼핏 보면 서로 적대적이지만, 하나같이 폭력이나 자본의 힘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
흔한 기술 문명 비판론 아닌가?
베르댜예프의 사상은 당대 지성의 시선을 끌었다. ≪멋진 신세계≫를 쓴 헉슬리도 소설 후기에서 그의 저서를 인용했다.
독창성이 있나?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하나의 범주에 놓고 분석한 관점은 선구적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1951년에 출간되었다.
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소위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본주의적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문제 삼았다. 익명화된 자본주의는 ‘생산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업 문제를 보라.
대안 있는 비판인가?
기독교에 근거를 둔 영적 능력의 계발을 통해서 찾고자 했다.
종교로 돌아가라?
인격이 존중되는 ‘영성’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여전히 종교적 주장 아닌가?
기독교 문화권에서 태어나 생활했기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개인의 종교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기독교가 물질주의, 이기주의 등 조직으로서 종교를 버리고 사랑과 자유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회복해 사회정의와 결합한다면 비인간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인격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부제가 ‘우리 시대의 이해를 위해’인데 지금 보면 그들의 시대 아닌가?
아니다. 1930년대와 오늘날은 그다지 멀지 않다. 2장과 3장에 나오는 비인간화와 대중의 문제, 실업 등 당대의 특징적인 문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주제다. 이데올로기로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위력은 그때보다 못하지만, 그런 이데올로기들은 일부 사람들에게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베르댜예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이 책과 관련 지어 보면, ‘인격’과 ‘자유’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격적 존재다. 인격은 내적인 중심을 갖춘 통합적인 존재, 곧 인간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실존주의 아닌가?
아니다. 하이데거의 주장, 곧 던져져 있으면서 앞으로 내던지는 실존 개념을 절대적인 비관론으로 평가했다. 철학적 인간학을 주창한 막스 셸러와 가톨릭 철학자 자크 마리탱과 교유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의 범주를 넘어서 독특한 인격주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그에게 자유는 무엇인가?
인격은 신의 형상을 닮은 모습이면서도 자유를 그 본질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유는 정치적 차원이나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국한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영원한 근거다.
그의 사상은 어떻게 발전했나?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인민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일대 사상 대결에서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가담해 반정부 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볼로그다에서 유형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인격의 자유를 제한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극단성과 파괴성을 우려하며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간파했다. 마르크스주의, 소련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을 비판하며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1902년에 ≪관념론의 문제들≫이라는 공동 논문집에 <철학적 관념론에 비추어 본 윤리 문제>를 기고해 유물론을 극복하고 관념론적 입장을 확고히 했다. 이러한 사상적 전환으로 ‘러시아의 종교적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20세기 초 새로운 사상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소련 공산주의 비판은?
이 책이 나오기 전인 1909년에 이미 그 싹을 보인다. 왜곡된 사상을 받아들이고 진리에 무관심한 혁명적 인텔리겐치아를 신랄하게 비판한 <철학적 진리와 인텔리겐치아의 진실>이라는 논문에서 특히 러시아혁명의 파괴성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술 활동은?
역사철학, 철학적 인간학, 윤리학, 인식론, 종교철학, 문화철학, 사회철학, 문학비평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썼다. 출간된 단행본 저서만 하더라도 서른 권이 넘는다. 인민주의 계열의 대이론가 미하일롭스키를 비판한 그의 첫 저작 ≪사회철학에서 주관주의와 개인주의: 미하일롭스키에 관한 비판적 시론≫은 당대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에게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1920년대에 펴낸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역사의 의미≫, ≪새로운 중세≫, ≪자유로운 정신의 철학≫ 등은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다. 자유와 인격에 대한 해석을 역사철학적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은 ≪러시아의 이념≫,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과 의미≫는 의심할 바 없는 명저다.
영향력은?
1960년대 말 소련에서 그의 이름을 딴 비밀 모임이 있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부터 오늘날까지 러시아에서 그의 저술은 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출간되고 있다.
그의 이름이 한국에서 낯선 이유는?
일반 철학계는 물론이고 기독교계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저서들이 대체로 경구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호연이다. 경남대학교 박물관장이고 역사학과 교수다.
베르댜예프를 연구하는 이유는?
학부 시절, 베르댜예프의 철학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그물≫을 읽고 그의 폭넓은 사유 세계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 외에도 ≪러시아 지성사≫, ≪러시아 사상사≫, ≪인텔리겐치아와 혁명≫ 등에서 드러난 그의 사상은 러시아 대평원과도 같은 풍성한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
매력은?
베르댜예프는 온갖 굴곡과 역경을 경험했다. 그의 생애와 러시아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다.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면?
현대의 비인간화로 인간은 신들림과 광기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은 신들림과 광기가 조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신은 혼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를 통제할 수 없게 될 때, 내적인 전일성(全一性)과 균형을 상실한다. 우주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세력들은 인간 내부에 침투해, 암시를 통하여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암시의 결과, 인간은 토지나 인종, 민족, 성과 같은 기본적이고도 우주적인 땅의 세력들에 의하여 신들린 상태가 되거나,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금전, 계급, 사회집단, 정당 같은 기본적이고도 사회적인 세력에 의하여 신들린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해체 상태에 있다. 인간은 암시와 신들림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상실하였다. 이것은 인격의 원리 자체에 대한 상실이다. 왜냐하면 인격이란 정신으로서, 비인격적인 우주적, 사회적 세력들에 의한 온갖 악마적인 신들림에 대한 정신적인 저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격이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본성을 밝게 해주는 정신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의 인간 운명≫,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지음, 조호연 옮김, 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