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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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현대 연극의 표상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가 피터 브룩이 별세했습니다. 20대에 연극계에 입문해 97세 나이로 영면에 들기까지 70여년 간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후반에는 파리 10구에 방치되어 있던 극장 ‘부프 뒤 노르’를 인수해 자신의 연극적 꿈과 환상을 펼쳤습니다. 관습적인 재현을 거부하고 언제나 대담하고 실험적인 연출로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후배 연극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거장의 죽음에 전 세계 문화 예술인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브룩은 극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침묵을 선사한 연출가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침묵은 한없이 슬프다.”
-리마 압둘 말락 프랑스 문화부장관
피터 브룩이 주목했던 작품들을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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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룩의 파격적인 연출이 돋보였던 무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 낭만 희극의 대표작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선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테네 직공들, 귀족 그리고 요정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들까지 등장해 작품 속 판타지의 세계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낭만 희극의 범주를 넘어서, 평생 모든 존재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그리고자 한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 줍니다. 1970년 피터 브룩은 ≪한여름 밤의 꿈≫ 무대를 온통 흰색으로 칠해 텅 비워 놓고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배우들을 등장시키며 파격을 시도했습니다. 브룩의 연출작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무대 중 하나입니다.
김용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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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룩의 미친 재능이 발휘된 무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가 작가로서 가장 완숙했던 시기에 지어진 작품으로, ≪햄릿≫, ≪맥베스≫, ≪오셀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꼽힙니다.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 왕은 나이가 들자 세 딸에게 효심 고백 대결을 시켜 왕국을 나눠주고 자신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가장 멋진 고백을 하리라 예상했던 막내딸 코딜리아는 입을 다물어 리어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효심 고백을 한 두 딸은 아버지를 배신합니다. 개인의 문제부터 가정, 국가, 그리고 자연과 운명의 문제까지 인생 전반에 대한 주제를 담아낸 ≪리어 왕≫은 시적 표현의 탁월함뿐 아니라 주제의 폭에서 4대 비극 중 가장 심오하고 진지한 세계를 그려냈다고 평가됩니다. 1971년 피터 브룩이 연출한 영화 ≪리어 왕≫은 원작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김용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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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룩의 연출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작가는 혹평했던 무대, 장 주네의 ≪발코니≫
장 주네는 현대 연극사상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졌습니다. 절도 등 각종 경범죄로 수감되어 수형 생활 중에 시집 ≪사형수≫를 출간하며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쏠리는 지나친 관심에 부담을 느껴 절필을 선언하고 오랫동안 침묵합니다. 주네가 5년 만에 침묵을 깨고 발표한 첫 작품이 바로 ≪발코니≫입니다. 이전까지 주로 자신이 속한 범죄 세계, 수형 생활, 동성애자로서 경험과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는 데 주력했던 주네는 이 작품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연출가들이 <발코니> 무대화에 뛰어들었고, 이를 계기로 주네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됩니다. 파리 초연 연출은 피터 브룩이 맡았습니다. 피터 브룩은 세련된 무대로 ≪발코니≫를 형상화했지만 장 주네는 공연에 실망해 “어떻게 ≪발코니≫를 공연해야 하나”라는 글을 써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이선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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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룩이 감탄한 무대, 조엘 폼므라의 ≪이 아이≫
이 작품은 10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아이를 아주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고백하는 임신 8개월 된 여성, 이혼한 아버지를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다섯 살 난 딸, 실직한 아버지에게 폭언과 구타를 일삼는 열다섯 살 아들, 딸보다 젊고 아름다운 엄마, 자기가 낳은 아이를 이웃 부부에게 주는 미혼모, 열 살 아들을 학교에 가지 못하게 붙드는 우울증 엄마, 손자 양육에 간섭하는 60대 아버지와 이에 맞서는 30대 아들, 출산이 두려운 산모, 시체 안치소에서 아들 시체를 확인하는 엄마, 냉정한 딸에게 과거에 자신이 더 냉정했음을 고백하며 사과하는 어머니. 이 10개의 에피소드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공유하며 오늘날 부모와 자식,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게 합니다. 피터 브룩이 2007년과 2014년 두 차례나 ‘부프 뒤 노르 극장’에 초청했습니다.
임혜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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