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선 1997∼2010
홍콩 문학 특선 1. ≪홍콩 시선 1997∼2010≫
자본주의 중국의 코, 홍콩의 시
중국의 땅이었으나 영국이 차지했고 작은 도시 샹강은 홍콩이 되었다. 서양의 물산이 모였다 흩어지고 동양의 산물이 이곳을 통해 빨려 나갔다. 1997년에 땅은 주인을 찾아갔고 떠날 사람이 떠난 뒤 남을 사람이 남고 다시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사회주의 국가의 자본주의 도시에서 역사와 공간은 대척한다. 시민은 원심하고 그들이 찾을 곳은 구심의 정체성이다. 사회주의 중국의 자본주의 후각기관, 고찬경은 국내 처음으로 이 민감한 도시 홍콩의 시를 소개한다.
≪홍콩 시선 1997∼2010≫은 뭔가?
중국 인민이기에 앞서 홍콩 시민인 그들의 삶, 그들의 노래다.
홍콩의 시가 중국 시 아닌가?
홍콩은 중국이다. 그러나 다른 중국이다. 독자들은 홍콩의 시를 통해 ‘다른 중국’을 만날 것이다.
중국 자본주의를 말하는가?
고층 빌딩의 야경으로 유명한, 우리가 아는 화려한 홍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삶을 엿보게 될 것이다.
대륙과 홍콩의 시는 뭐가 다른가?
둘은 다른 역사를 살았다. 20세기의 문화유산과 두 지역의 판이한 창작 환경이 오늘날의 대륙 시와 홍콩 시의 차이를 낳았다.
홍콩 시는 어떤 시인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전후해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사회, 역사, 문화 정체성 탐구를 창작의 주제로 삼았다. 당시 전 홍콩인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어떤 흐름을 보이는가?
그들은 단일한 정치 이데올로기나 특정 문예사조에 따른 창작을 강요받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 후반에는 대륙의 시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지리 특성이 반영되었나?
현대화된 대도시이자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하는 곳이다. 도시민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인류 보편적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
1997~2010년으로 시기를 제한한 까닭은?
‘1997’을 빼고 오늘의 홍콩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1997년은 홍콩의 주권이 대영제국으로부터 중국에 정식 반환된 해다. 급격한 역사적 사건을 거쳐 새로운 세기로 진입한 홍콩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홍콩인의 정서를 함께 살펴보고 싶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라.
홍콩 섬을 영국에 할양한 1842년, 제1차 아편전쟁 패배 이후 150여 년 만에 영국령이던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로 편입된 해가 1997년이다. 거대한 역사 전환의 시기에 쓰인 최근 시를 골랐다.
홍콩 시의 소개는 드문데?
올해로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았으나 시집의 번역과 출간은 아직 드물다. 산문에 비해 ‘시’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시집의 번역이나 출간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번역 결심의 계기는?
역사적 배경도 그러하거니와 지역이 지닌 거의 유일무이한 특성 때문에 홍콩 문학은 여전히 중국 문학과 병립되는 지위에 있다. 중국 반환 이후에도 중국 문학에 통합되지 않고 여전히 ‘홍콩 문학’으로 존립할 수 있는 근거와 가치를 밝히고 싶었다.
번역의 원칙은?
원뜻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어로 된 ‘시’가 우리말로 번역된 후에도 ‘시’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특별한 문제는?
한 작가의 선집이 아니라 16명의 시를 서너 수씩 다루다 보니 각 시인의 어조와 시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 여의치 않았다. 수없이 등장하는 지명과 인명, 고유명사의 처리와 사전에 없는 여러 단어를 적합한 우리말로 옮기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시의 독법이 궁금하다.
홍콩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 문제 등을 제재로 쓰고 오늘날의 당면 문제를 직접 다룬 시들이 적지 않다. 홍콩 시라는 특성을 부각하고 현장감과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표기한 여러 광둥어 지명과 인명 또한 낯설 것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여유를 가지고 시를 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한국 독자에게 ≪홍콩 시선 1997∼2010≫은 무엇인가?
독자들은 중국을 이해하는 이색적인 창 하나를 열게 될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서도 매우 이색적인 공간이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제법 친숙한 도시라고 할 수 있으니까.
독자에 대한 기대는?
오늘과 내일에 대한 그들의 고민에 잠시나마 동참하게 되기를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의 고찬경이다.
성냥팔이 소녀
(1)
성냥팔이 소녀는 제가 테러리스트란 걸 모른다
성냥을 긋는 순간
인공위성이
얼어붙은 구름 저 너머에서
자신을 조준하는 걸 모른다
길가에 서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외치고
마차에 걸려 고꾸라지며
쇼윈도에 기댄 채
웅크려 덜덜 떠는 소녀는
동화
계단 아래
일련의 도식화된 암호는
모조리
해독되었다
지령을 수행하려 하자
온갖 비행체들이
소녀의 머리 위를 감시한다
(2)
성냥팔이 소녀는 제가 테러리스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두 번째 성냥을 긋자
종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교회당 안팎
샹들리에의 양초가
날아오르려 한다
온 신경을 모아
카운트다운
그러자
불꽃이 일고
성냥개비 쌓여 간다
따스하고도
난폭한
눈이
온 땅을 뒤덮는다
(3)
성냥팔이 소녀는 제가 테러리스트란 걸 모른다
추위와 굶주림
외로움과 슬픔을
이겨 내고
마지막 성냥
그 성냥을 긋지 않는다면
어쩌면
성냥이
놀라운
은혜의 불을 밝힐지도 모를 일
안데르센 선생께서
한숨 한 자락 토한다
다행히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손에 든 광주리를 쏟아 내고 짓밟아라
그 자그마한 불덩이
그 자그마한 열기
세상의 정갈함을
어그러뜨리는 그 불꽃을
훅 불어 꺼뜨려라
아직 늦지 않았으니
2002. 12. 31
≪홍콩 시선 1997∼2010≫, <성냥팔이 소녀>, 인장(飲江) 지음, 고찬경 옮김, 70~73쪽.